오늘 아침은 조금 어려운 주제겠지만 사유의 폭을 0과 1의 세계, 존재의 모습,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들여다보기로 확장해 보자. 인류 지성사에 항상 등장하는 명제이고 수많은 현인들이 해답을 제시했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안의 화두로 어설프게나마 들이대보자. 해 본 놈과 안 해본 놈의 차이와 자존감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그렇다.
우주는 명확하다. 0은 0이고, 1은 1이다.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고, 죽은 것은 죽은 것이다. 그 사이에는 머물 공간이 없다. 세상은 종종 회색지대가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존재의 본질에 있어 회색은 없다. 존재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이 단순하고도 결정적인 명제는 파르메니데스의 고대 철학을 넘어, 오늘날 양자역학의 근본적 물음들까지 꿰뚫고 있다.
우리는 종종 확률 속에서 존재를 논한다. 0.2의 가능성과 0.7의 확률. 그러나 그것들은 존재가 아니다. 가능성일 뿐이다. 가능성은 현실이 될 수 있는 문턱에 있을 뿐,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존재는 실현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 순간 그것은 '1'이 된다. 실현되지 않는 한, 그것은 '0'이다. 이 세계의 본질은 그토록 명확하다. 결정적 확률론의 세계란 바로 그런 것이다. 양자역학의 해석에서조차, 입자가 관측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지만, 관측되는 순간 하나로 수렴한다. 그 순간, 0 또는 1이 된다. 우주는 본질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움직인다.
죽음과 삶 또한 그렇다. 살아있는 자는 죽지 않았고, 죽은 자는 살아있지 않다. 혼미한 상태, 식물인간, 혹은 의식불명의 상태라고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기준은 존재한다. 존재의 경계는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 명확함 속에서도 우주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것이 확실하고 결정적으로 보이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늘 불확실성과 마주한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은 이 모순을 정면으로 수용한다. "존재는 관측될 때 비로소 확정된다"는 이 해석은 세상의 절대성과 상대성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는 대표적 방식이다. 존재는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듯한 양면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세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완전히 열려 있지 않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깨달음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듯, 깨달음은 문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말은, 참된 진리는 언어로 전할 수 없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곧, 누구도 타인의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옮겨올 수 없다는 말이다. 자기의 우주, 자기의 해석, 자기의 앎이 있을 뿐이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연결되어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가 연결되어 작동하는 이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의미를 찾는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사명이며 동시에 숙명이다. 단순한 바위조차, 누군가에겐 기념비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장애물이다. 존재는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에 부여된 의미를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이때 의미란 그 자체로 절대적이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다. 시간마다 바뀐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존재’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다. 우주는 우리에게 현상을 제시하고, 인간은 그 현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존재를 단순히 이어가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창조하고, 관계를 맺고, 스스로의 해석을 우주에 투영하는 일이다.
결국, 이 세계는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코드 같은 질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각자의 해석이 가능한 아날로그적 여백도 품고 있다. 이 두 세계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바로 '대칭'이다. 생과 사, 있음과 없음, 말과 침묵, 모든 것이 상반되어 있으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 대칭의 구조 안에서 우주는 스스로를 설계했고, 인간은 그 일부로 존재한다.
세상에는 명확한 진리도 있고, 해석만이 가능한 진리도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이에서 진동하는 진실의 파동을 감지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일이다. 그것이 곧 삶이다.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끊임없이 0과 1 사이를 오가며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끝은 없다. 끝이 없는 이 탐구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