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감정의 디테일이다

by Lohengrin

실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섭취한 에너지를 가지고 오감이 작동되고 머릿속 뉴런의 활동을 통해 기억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끝점입니다. 정말 오묘한 한 점입니다. 살아있음과 없음의 경계이자 두 영역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 어떤 생명체도 그 한 점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없으며 스스로 사라진 것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고 원인이고 시작이고 끝입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할까요? 끊임없이 공부하는 일입니다. 공부는 새로움을 찾아가고 확인하는 학습입니다. 새로움이 쌓이지 않고 정체되면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현 상황에 안주하면 그저 그런 상태로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의 한 방편이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은 글쓴이의 삶과 지식을 오롯이 담아낸 브레인의 외장하드입니다. 좋은 책 한 권 만나는 일, 좋은 문장 하나 만나는 일은 글쓴이의 전체 삶에 동조하고 공감하는 일과 같습니다. 앞서간 선지자들이 평생 고뇌한 결과물을 훔쳐보고 따라가 보는 행운을 책을 통해 경험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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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환경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주변이 맑고 밝으면 내가 맑고 밝게 되고 주변이 어두우면 내 마음 또한 어둡게 되는 게 자연의 현상이자 세상의 이치입니다. 제 주변에 밝고 맑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제게 그만큼 행운이 따를 기회도 많아짐을 의미합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지자들의 노력과 생각이 담긴 책을 통해서나마 근원을 들여다 봄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 놓습니다. 좋은 책 한 권 만나는 일도 주변 환경이 맑고 밝은 것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이해하는 평범한 것일 수 있으나 모두 다 아는걸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의 미세한 차이가 삶의 방식에 엄청난 격차를 가져옵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연의 변화를 쫒는 우리의 여행도 바로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느끼는 집중적인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낙엽이 지고 태양이 기우는 현상은 세상 만물 어느 것에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색깔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자연의 냄새는 어떻게 달콤해져 가는지를 아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바로 실존을 들여다보는 디테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는 차 한잔의 따뜻함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여러 차례 찻잎의 풀어짐을 지켜보며 블랙티 찻물의 색깔이 연노랑을 지나 옅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빠져듭니다. 자연이 찻잔에 가득 담겨있음을 알게 되고 그 에너지를 마시고 있음도 깨닫게 됩니다. 깨달음은 바로 세밀한 관찰과 관심입니다. 스님들이 동안거 내내 면벽수도 하며 화두 하나 붙잡고 늘어지는 것과 동일합니다. 디테일의 눈으로 자연을 보는 그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감각을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디지털로 담기도 합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자연의 모습을 다른 세상에 전합니다. 그렇게 전달된 사진은 곧 보낸 이의 마음입니다. 받아보는 이도 보낸 이 가 왜 이 사진을 보냈는지 염화시중으로 눈치챕니다. 감각의 교류입니다. 네트워크입니다.


세상 모든 것, 내 주변의 모든 것, 지구 생명체 모든 것, 태양계 모든 것, 우주의 모든 것, 빅뱅 이후 등장한 모든 것의 합이 결국 지금 실존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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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그대는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지요.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지요. 지구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조상인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er)를 통해 지금 우리는 같이 호흡하고 같이 기억하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살고 있습니다. 배신과 질시와 편차를 가져다 붙일 공간이 없습니다. 같은 근원에서 시작한 같은 몸이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바람에 뒹구는 마른 낙엽의 갈색 가을의 자연은 이렇게 디테일하고 세밀하고 세련되게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 색깔을 입히고 있습니다. 르느와르가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모네와 고흐도 섞지 못한 물감의 색감입니다. 그 환상의 가을색은 그대와 내 가슴속에만 존재하는 색입니다. 밝고 맑은 사랑의 색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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