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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6. 2021

코로나 블루 시대, 위로보다 격려가 필요하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고픈 인류의 열망이 한국땅에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오늘 화이자 백신이 항공 수송되어 도착한다고 온 매스컴에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관심만큼 국민의 기대가 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빨리 이 닫힌 공간을 열고 싶어 하는 모두의 마음이 담겨있어서 그럴 겁니다. 디지털 백신 여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합니다. 상대적 차별화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만 사람들의 이동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듯합니다. 이젠 어차피 모든 사람이 시기적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백신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재 자체가 공진화의 길을 걷듯이 코로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들도 공진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한 나라에서만 완벽히 백신 접종을 끝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가야 끝낼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코로나가 지배한 세상 속에서 많이 우울하셨나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무기력증으로 발전하지는 않으셨나요? 조금만 더 버티시지요. 오늘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됩니다. 이제는 코로나보다 백신의 세력이 점점 더 세어질 테니 분위기는 서서히 반전되어 넘어갈 겁니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백신의 넓이를 넓히고 코로나의 범위를 좁혀나가 일망타진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떻게 변이 되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녀석이라 한칼에 베어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한칼의 휘두름이 작동할 때까지 철저한 개인위생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종식이 선언될 그 어느 날이 올지라도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한번 불안을 경험하면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코로나란 녀석은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그 불안은 더욱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만연했던 무기력증은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무기력증은 에너지는 있는데 어디에 쓸지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빈둥빈둥 대거나 허송세월을 하는 현상입니다. 에너지가 고갈된 burn out 현상하고는 다릅니다. 이 무기력증은 의욕을 잃었을 때 나타납니다. 팬데믹 시대에는 노력의 주도권이 나에게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무엇을 해도 되지 않고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조차 없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의미를 상실하는 것. 이것이 무기력입니다. 


그렇다면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은 간단합니다. 의미를 찾으면 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고요?" 그것이 바로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아무리 운동을 해도 체중이 줄지 않는 경우에도 무기력해집니다. "나는 체질상 살이 쪄서 어쩔 수 없나 봐" 정도로 위안을 삼고 다이어트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체질의 문제가 아니라 먹는 양의 문제였음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물만 먹어도 살찌는데"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하루에 먹는 칼로리의 양을 들여다보면 은근히 이것저것 간식을 많이 먹는다는 것도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소모하는 칼로리보다 들어오는 칼로리가 많으니 당연히 체내에 축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이어트의 기본은 운동과 먹는 양을 같이 병행해서 조절해야 가능한 일임은 이젠 천하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무기력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노력에 목표를 정확히 설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목표를 숫자로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중을 줄이겠다는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다면 3개월을 목표로 잡고 체중을 5kg 줄여 3개월 후에 65kg의 몸무게를 만들거야 하는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3개월치 차트를 만들어 매일매일 운동량과 체중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숫자는 확실한 의미부여입니다.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어줍니다. 눈에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데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나와의 약속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해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그래서 크고 장기적인 목표일수록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목표를 선명하고 확실하게 세워야 차근차근 실천해낼 수 있습니다. 막연하고 두리뭉실한 목표는 몇 번 며칠 실천하다가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의미와 의지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위로를 주는 사람보다는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진짜 문제와 싫은 감정이 뒤엉켜있을 때는 정확한 문제 파악이 어려워 무기력해집니다. 그 문제의 장점과 단점을 분리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다음 행동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바로 격려해주는 사람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위로와 격려는 다릅니다. 슬픔의 상처는 위로받아야 하지만 무기력은 상처가 아니라 가야 할 방향을 모르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격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장단점을 비교해주고 장점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람입니다. 바로 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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