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Mar 02. 2021

손수건, 가슴에 달고 등교하던 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눈도 오고 추워지고 있는 걸까요? 어제 장맛비처럼 내리던 봄비가 밤새 눈으로 변해 제법 솔찬히 쌓여 있습니다. 다행히 도로가 얼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잠시 계절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합니다. 아침에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 순간, 바깥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이 소복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어제 봄비 내려 대지의 거죽을 촉촉이 적셔놓은 틈으로 새싹들도 움 틔울 준비를 했을 텐데 흰 눈 이불을 덮고 밤새 잘 버텨냈을지 염려가 됩니다.


그렇게 시각적으로 겨울과 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와중에도 학교 앞이 시끌벅적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관계로 꼬맹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는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들여오는데 참 오랜만에 들리는 아이들 목소리입니다. 3월 첫 등교일을 아 오랜만에 문을 연 교문을 들어서는 모습이 보입니다. 운동장에는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깔려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색감을 보입니다. 곧 어린아이들의 발자국으로 뒤덮여 초록색 인조잔디가 드러나겠지만 그 혼란스러움이 오히려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학교 교문에는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새내기들의 첫 발걸음도 오늘 있을 것 같습니다. 교문 앞까지 부모님 손을 잡고 왔을까요?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하시는 어머니들이 학교 담 사이사이에 서서 아이들의 등굣길을 보살피고 계십니다. 그렇게 한 세대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학교라는 집단생활을 통해 또래들의 생각과 행동을 접하면서 다양성의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신세계로 들어섭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사귀어야 합니다. 새로움은 늘 긴장과 가슴 떨림이 공존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측이 필요한데 새로 접하니 예측을 할 수 없습니다. 긴장하는 이유입니다. 더구나 경험을 비교할 비교치가 적은 초등학생의 등교 첫날은 더욱 그럴 겁니다. 긴장을 넘어 두려움으로까지 감정이 확산되어 갑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날을 떠올려봅니다. 1971년 봄 그 어느 날이었겠죠? 어머니 손을 잡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40년도 더 된 입학식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브레인의 장기기억에 강하게 심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나와 브레인을 덮고 있었기에 장기기억으로 각인되어 버린 것입니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유럽의 명문 귀족 집안에서는 집안의 중대한 회의 내용을 후대에 전하고 싶을 때는 회의에 꼭 집안의 어린아이를 한 명 배석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고 들은 아이를 물속에 던져 넣어 강한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충격으로 아이는 그 현장에 대한 기억을 평생 가져가게 했다는 겁니다. 잔인하다는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는 의구심이 들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집안 내력을 전하고 싶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아니 당시는 국민학교였네요. 입학식 때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갔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손수건을 왜 가슴에 달았는지는 지금은 상상이 안 가겠지만 당시에는 다들 코를 질질 흘리고 다녔습니다. 그 당시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는지요? 3월 초라고 해봐야 오늘처럼 추위가 가시지 않은 그런 날들이었겠지요. 요즘처럼 집안에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고 그나마 있는 대중목욕탕도 자주 갈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초년생들 중에는 잘 씻지 못해 손도 트고 코에는 기차 레일이 두 줄 생겨 훌쩍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당시 겨울은 추웠다는 반증일 수 도 있습니다. 손이 튼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날이 추워 잘 씻지 못해 손이 갈라지고 피가 날 정도의 '튼다'는 표현은 정말 잊힌 사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입학식 교문을 들어서면 이름을 확인하고 반별로 줄을 세웁니다.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 얼굴을 봅니다. 저는 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존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영아 선생님이십니다. 이 존함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근 10년 정도 잊고 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새롭게 등장을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이과와 문과로 나뉘는데 저는 문과였습니다. 같은 반에 김경수라는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그해 봄, 학교 소풍을 가기로 했는데 비가 억수로 내려 소풍이 취소되고 모두를 점심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다들 집으로 가지 않고 김경수라는 친구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경수네 집 거실에서 '함영아 선생님' 사진을 본 것입니다.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아들이 경수였습니다. 인연은 참으로 그러한 것입니다.


지금은 내려다보이는 초등학교가 조용합니다. 다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겠지요? 코로나 19로 비대면 수업도 진행하겠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서로 만나서 부대끼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성을 익히게 됩니다. 컴퓨터 화면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관계를 얼굴을 보며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모두들 코로나 19로부터 잘 피해 가며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블루 시대, 위로보다 격려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