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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3. 2021

출근길 잡념을 들여다보다

아침 출근길,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발효 이틀째여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다소 한산한 전철 안입니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전철 칸 냉방도 추위를 느낄 정도입니다. 잠시 빈 좌석에 앉아 휴대폰 속 메일을 체크합니다. 포털 사이트로 들어가려다가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넣습니다. 앞좌석 7개 중에 5명이 앉아 있습니다. 물끄러미 앞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봅니다. 남자 3명에 여자 2명입니다. 남자 한 명은 백팩을 안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나머지 4명은 모두 휴대폰에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여자 1명은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습니다. 무슨 재미있는 영상을 보고 있을까요?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제 양옆으로 앉은 2명의 건장한 사내들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길래 힐끗 쳐다봤습니다. 오른쪽 남자는 30대 정도 나이가 든 듯합니다. 휴대폰 안에서는 게임 이름은 모르겠으나 농장에서 식물도 키우고 하는 게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왼쪽 옆에 앉은 남자분은 40대는 넘어 보입니다. 일수가방을 오른쪽 옆구리에 낀 채 맨발에 발가락 끼는 쪼리를 신고 정강이에 털이 숭숭 난 채 반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휴대폰에서는 페이스북이 놀라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내가 왜 지금 옆 사람이 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지? 옆 사람이 무얼 보든 무얼 하든 내가 왜 신경을 쓰고 있는 거지? 각자 자신들의 환경에 따라가고 있는 건데 왜 내가 그들의 행동이 궁금해지는 거지?


아무 생각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가지에 생각을 집중하지 않았기에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에 시선이 옮겨지고 거기에 따라 별 의미 없는 생각이 군더더기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비단 옆 사람들의 행위만 눈에 들어왔던 것도 아닙니다. 옆 사람 게임하는 걸 훔쳐보다가 안내방송에 곧 청량리역에 도착한다는 말이 들립니다. 그러자 20여 년도 넘은 그 어느 날 청량리역 앞 은행 지점장을 하시던 동네 분과 시장 안쪽 해장국집에서 국밥을 먹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그 식당에서 구두도 누가 바꾸어 신고 가서 황당했던 사건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게 잡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상되어 떠오릅니다. 덜컹거리는 전철 창가로 멀리 건물들의 간판도 수없이 보입니다. 그중에 '효창'이라는 간판도 보입니다. 무얼 하는 집인지 알 수 없으나 언 듯 보이는 '효창' 간판은 효창공원으로 오버랩됩니다. 효창공원 옆에 있는 설렁탕 맛집의 식당 풍경이 떠오릅니다.


아! 출근길 내내 잡념에 잡념의 꼬리는 이어집니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오늘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그러다 또. 앞좌석에 앉은 다른 여자분의 꽃무늬 원피스에 시선이 갑니다. 단아하니 예쁩니다.


어떻게 이렇게 순간순간 왔다 갔다 정신없이 잡념들의 혼선이 이어질까요? 갑자기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잡념에 시간을 보내도록 한가한 것인가? 근심 걱정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먹고살기 힘들어봐야 한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건가?


할 수 없이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 봅니다. 이 잡념의 시간을 벗어나 오롯이 각성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잠시 멈췄다 다시 서서히 내 쉽니다. 마스크 너머로 들숨과 날숨의 소리까지 귀로 들립니다. 그렇게 서너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데 다시 안내방송이 들립니다. 을지로 입구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시 정신은 명동에서 쇼핑하던 옛날이야기로 채워집니다.


이런 제길. 한 생각 움켜잡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물소리 새소리만 들리는 산사를 찾아가서 면벽 수도하는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잡념의 순간들은 무제한 적으로 떠오릅니다. 브레인이 생각하는 기본 기저인데 어쩔 수 없다는 것조차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시간을 잡념으로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화들짝 부끄러워집니다. 정신을 추스르고 전철에서 내릴 준비를 합니다. 사무실에서 쌓인 업무를 하다 보면 잡념이 많이 사라질 것을 기대해 봅니다. 아니 집중할 수 있는 생각조차 갖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재료와 정보들을 쌓아놓지 않았기에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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