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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0. 2021

오늘 첫눈을 보셨나요?

오늘 아침 첫눈이 내렸습니다. 기상청 전매특허인 '곳에 따라 눈'일 수도 있지만 제가 사는 동네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이미 지난 주말 강원도 산간 마을과 덕유산 상고대 사진 소식이 첫눈 소식을 전해주긴 했지만 직접 눈이 내리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눈이 온다는 것은 같은 현상이지만 감정을 작동시키는 도구로써는 전파 기기와 종이의 사진을 보는 것보다 직접 경험했다는 것의 차이입니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영상 채널로 수없이 전해지지만 기어코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행위, 바로 감정을 발현시키는 트리거였던 것입니다.


오늘 내린 첫눈을 목격한 시간은 새벽 6시 20분입니다. 아직 어둠이 지배하고 있을 시간이긴 합니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반짝이는 것들이 무수히 보입니다. 첫눈입니다. 첫눈을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눈발의 굵기로 봐서 금방 비로 변해버릴 듯해서입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봤지만 사진상에서는 눈이 내리는지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아쉽지만 첫눈을 증명하듯 휴대폰 사진으로 눈 내리는 모습을 정지시켜놨습니다.


그리고 전철을 내려 회사 건물이 있는 공간으로 올라오는 순간, 역시나 눈은 비가 되어 부슬부슬 내리고 있습니다. 기온도 영상 2도에서 시내 한 복판으로 오니 조금 올라간 모양입니다.


그렇게 이번 계절 첫눈의 영상은 마음속에 담아지고 휴대폰 사진 화소로만 남아있습니다.

오늘 첫눈을 보신 분, 계신가요?

첫눈 하면 어떤 추억,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다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숨어 있을 듯합니다. 

첫눈이 폭설로 내려, 움직이기에도 힘든 악몽으로 작동했던 적은 아직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첫눈은 말 그대로 살포시 첫 존재임을 보여주는 암시 정도로만 모습을 보이거나 하얗게 쌓였다고 해도 첫눈이 내릴 시기의 바깥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금방 녹아, 모습을 감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눈이 내리는 현상은 1년의 순환 사이클 중에서 흔치 않기에 첫눈 내리는 모습이 강하게 각인됩니다. 눈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야 한다는 아주 명쾌한 조건 말입니다. 물론 눈구름이 형성될 만큼의 대기 조건도 있어야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구름의 무게가 눈이냐 비냐의 결정은 기온이 합니다. 눈을 볼 수 있는 조건이 있다는 것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계절의 첫눈의 때가 바로 오늘이었던 것입니다. 이 맞아떨어지는 때는 장소 하고도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서 이때의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right time, right place는 자연현상을 목격하는 데 있어서도 절체절명의 진리입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 내가 있었느냐는 물음입니다. 직접 보고 듣는 경험의 현장 말입니다. 


오늘 첫눈 내리는 현장을 목도하신 분들은 첫눈을 못 보신 분들보다 경험의 기억을 먼저 한 켜 더 쌓으신 행운을 누리신 겁니다. 며칠 아니 몇 주 뒤엔 또 눈이 내리겠지요. 그때 내리는 눈을 본 사람들에게는 그 눈이 첫눈이 될 겁니다. 시간차가 있습니다. 첫눈을 먼저 경험한 사람은 그만큼의 추억을 시간 속에 쌓을 수 있고 첫눈 내리는 현상을 목도한 오늘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는 발현의 트리거가 될 것입니다. 첫눈 내리는 현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추억을 환하게 장식하고 미래를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첫눈은 그렇게 마음속에서도 녹지 않는 불씨로 모습을 바꿉니다.


눈을 365일 매일 볼 수 도 있다고요?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매일 쳐다볼 수 있어서 그렇다고요? 그 눈이 그 눈이 아니지만, 그 눈이 그 눈이 아닐지라도 눈을 매일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행복하겠습니까? 그 눈이 그 눈이 되도록 사랑의 감정에 불씨를 살려 보시지요. 곧 추워질 텐데 옆에 있는 사람이 따뜻한 화롯불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보시지요. 하다못해 주머니 난로라도 장만해 월동채비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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