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Apr 26. 2022

출근의 일상은 매일 다른데, 같다고 착각하고 있다

일상은 항상 똑같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비슷할 뿐입니다. 매일 집에서 나와 전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하고 ID 패스로 출입문을 열면 자동으로 하루 근무가 시작됩니다. 똑같은 루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똑같이 보일 뿐입니다.


조금만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고 마스크 너머 코끝으로 전해오는 향기를 느껴보면 매일매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순간, 온몸으로 쏟아지는 햇살의 눈부심에 눈을 찡그리게 됩니다. 분명 어제 아침은 이슬비가 내려 우산을 썼습니다. 아파트 정원에 심어진 나무들의 연초록은 이제 짙은 초록으로 매시간 색깔을 덧입히고 있음도 눈치채게 되고 꽃들의 색깔도 흰색의 꽃들에서 연분홍의 붉은 영산홍과 철쭉으로 바뀌어 있음도 보게 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고 지나치는 아파트 뜰의 풍광이 이렇게 매일 바뀌는데도 그저 무심히 지나갔을 뿐입니다.


전철에 오릅니다. 코로나 거리제한이 풀려서 그런가요? 매일 똑같은 시간에 타는 전철에 부쩍 사람들이 많아졌음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고 봐서 그렇게 보일 수 있는 현상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언한다는 자체가 이전과의 비교로 인하여 도출된 결론을 가지고 본다는 사실입니다. 이 역시 보고자해야 보입니다.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많이 얇아졌습니다. 전철 안을 두리번거려도 트렌치코트 입은 사람조차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철 천정에서는 에어컨이 돌아갑니다. 벌써 온도의 시간은 그만큼 많이 흘렀고 사람들의 체온 역시 그만큼 많이 모여있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책상에 도착하여 데스크톱 컴퓨터 부팅 스위치를 누릅니다. 모니터 화면이 밝아지면서 부팅 절차를 수행합니다. 회사 보안 패치 소프트웨어가 먼저 작동하여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합니다. 회사 홈페이지와 이메일들이 차례로 열립니다. 전철에서 휴대폰으로 이미 이메일을 확인했습니다만 재확인합니다.  역시 똑같은 루틴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메일을 여는 행위는 같지만 그 메일 속에 담긴 콘텐츠들은 매일매일 다릅니다. 메일 내용에 따라 오늘 할 일들의 행보가 다르게 정해집니다.

대충 오늘 하루 업무적으로 진행될 일들이 예측되고 나면 잠시 탕비실로 가서 아침 茶를 준비합니다. 오늘은 딸아이가 어제 LA에서 오면서 사온 잎차를 준비합니다. 티백에든 블랙티입니다. 어제까지는 싱가포르 TWG사의 나폴레옹이라는 블랙티를 마셨습니다. 어제와 오늘 마시는 차의 종류가 바뀌자 컵도 바뀝니다.  컵에 정수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을 담고 티백차를 컵에 담습니다. 전형적인 영국식 홍차의 연붉은 색깔이 컵 안에 퍼집니다. 컵 안의 물 양보다 우러나오는 티의 색깔이 너무 짙게 배어나옵니다. 실로 된 티백을 몇 차례 들었다 놨다 하고는 티백을 뺍니다. 한번 더 우려 마셔도 될 듯합니다. 우려진 차를 입안에 담아봅니다. 떪은 잔 향이 입에 고입니다. TWG사의 차와는 수준차가 납니다. 대량 생산된 전형적인 보편적 차맛입니다. 문득 영국 여행할 때 호텔방에 놓여있던 티백차를 마시던 향의 추억이 오버랩됩니다. 그렇게 어제와 다른 차맛을 통해 어제와 다른 추억의 회로가 가동됩니다.


세상에 어제와 똑같은 일상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매일 새롭고 매일 경이로움이 넘쳐남에도 내가 보지 못했고 내가 느끼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일침은 일상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지금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창가에 놓인 화분들이 한껏 햇살을 즐깁니다. 그렇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한 다를 겁니다.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보고 꽃잎에 코를 가져다 대고 꽃향을 맡아볼 일입니다. 화면 속 이메일에서 매일의 콘텐츠를 찾아낼 일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마스크 착용으로, 눈앞의 사람을 못 알아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