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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6. 2022

맛의 절반은 향이고, 향의 절반은 기억이다

이 아침, 코끝에 전해지는 향기는 수백 가지는 족히 될 터이다. 눈을 뜸과 동시에 양치질 치약의 상큼한 민트향, 면도거품의 박하향, 샤워젤의 아로마향, 아르마니 코드 오드퍼퓸의 향을 만나게 된다. 아파트 뜰에 피어난 수많은 꽃들로부터 전해오는 향들도 코끝에 닿았을 것이고 전철역에서 스치는 여인의 차랑 차랑한 머릿결에서 바젤 향의 은은함도 심호흡을 하게 했을 것이다. 어디 향기로운 향만이 있으리오. 밤새 입안에서 노느라 정신없던 박테리아들의 냄새도 있을 것이고 아침부터 찝찝하지만 화장실 변기를 타고 내려가는 덩어리의 냄새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향과 냄새들이 코끝에 닿았다 사라졌는데 그중에서 어느 한 가지 향이 지배적으로 머리를 지배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전철 환승역 중간에서 만나는 빵 굽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눈길까지도 빵으로 가게 한다. 베이커리에 들러서 크로와상이나 카스텔라라도 하나 사서 환승 전철을 타게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매일 이 베이커리를 지나칠 때마다 15년 가까이 지난, 2008년도 갔던 파리 가족여행 때 묵었던 호텔 앞 빵집이 오버랩된다. 3번이나 갔던 파리지만 그중에서 유독 2008년의 파리가 떠오르는 건, 바로 빵집에서 풍겨 나오는 빵 굽는 냄새가 기억의 창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파리의 동네 베이커리는 일주일 내내 아침마다 들러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샀던 기억 때문 일거다. 아침 7시 반에 어김없이 문을 열지만 이미 새벽에 빵을 굽느라 빵집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코끝에서 빵 굽는 냄새가 길을 인도한다. 그렇게 아침산책을 나왔던 발걸음이 빵집을 향한 것이 새앙쥐 뒤주 드나들듯 일주일을 오갔다.


파리 빵집의 빵 굽는 냄새와 전철역 환승역에서 만나는 빵집의 빵 굽는 냄새는 분명 다를 터이다. 그럼에도 비슷한 냄새로 인식하고 기억의 시냅스들을 마구 재생하는 것은 역시 살고자 하는 기본 생존 욕구에 충실한 까닭이 아닐까 한다. 먹어도 괜찮다는 기억에 저장된 향이기에 언제든 비슷한 향이 코끝에 전해지면 안전 욕구가 번져나간다. 먹어도 좋다는 신호로 인식하는 것이다.

냄새는 2가지 기능을 한다. 먹어도 좋다는 것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의 2가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아침의 빵 굽는 향은 먹어도 좋다는 긍정적 기능의 발호다. 강한 악취가 나는 경우였다면 본능적으로 회피하게 했을 것이다. 악취가 나는 것을 먹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냄새와 향은 기억이다.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화학적 감응 능력이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냄새와 맛은 화학적 작용에 의해 감지된다. 시각과 청각과 감각은 물리적 자극이다. 냄새는 반드시 냄새 분자가 코의 후각 상피 세포에 닿아야 한다. 화학적 분해가 일어나야 비로소 냄새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화학적 분자의 접촉이 있어야 인지가 가능한 맛과 향기는 그래서 같이 간다. 코를 막고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봐야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다. 코를 막으면 입과 혀에 닿는 물리적 감각만으로 맛을 감지해야 하는데 이것은 익숙지 않다. 아무런 맛이 안 난다고 평가해 버린다.


맛과 향에 민감한 사람이 기억도 예민하게 잘 해낸다. 나이 들어 기억이 흐릿해지면 맛도 잘 모르고 냄새도 잘 못 맡는다. 연세 드신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국이 점점 짜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갑자기 어머니 국 맛이 짜지면 인지기능에도 문제가 있는지 체크해볼 일이다. 코끝에 전해오는 빵 굽는 냄새가 어머니 젖가슴 냄새로 오버랩되고 다시는 그 냄새, 그 향이 기억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을지라도, 이렇게 빵집 앞에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 기억의 소환만으로도 가슴 먹먹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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