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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31. 2020

봄의 매력, 봄의 능력

이제는 색이 지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년보다 따뜻한 기온 덕에 일주일은 더 빨리 계절의 시간이 흐른 때문입니다. 흰색이 그렇게 멋스러운지는 목련꽃과 매화를 보며 알게 되고 노란색이 그렇게 화사하면서 수수한지는 산수유와 개나리를 보고 알게 됩니다. 이 아침, 아파트를 나서며 뜰에 보이는 봄의 색깔이 그렇습니다. 또한 분홍색과 붉은색에 그렇게 가슴 뛰게 하는 정열이 숨어 있을 거라고는 진달래를 보고 알게 됩니다. 아직 초록색의 조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색의 현란함에 정신 못 차리는 이유는 바로 배경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긴 겨울의 쌀쌀하고 쓸쓸함을 넘어 삭막하기까지 하던 배경에 하나 둘 색이 입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하룻밤 지날 때마다 확확 달라집니다. 달라지는 색깔의 변화에 당황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봄이 지닌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딱 열흘만입니다. 화사함이 항상 화사하기만 하면 화사함이 아니듯이 열흘만 딱 보여주는 절제감이 바로 봄이 지닌 숨은 능력입니다. 보여주되 지나치지 않고 화사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바로 조선 건축의 미를 이야기할 때 하는 '수수하다(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다)라고 표현하는 그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유홍준 교수가 자주 인용하는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의 전형입니다. 

봄은 그런 것 같습니다. 있으되 있는 것 같지 않고 부족한 듯 하나 부족하지 않고 넘치는 듯 하나 넘치지 않는 그런 중용의 상태 그래서 더욱 애 닿게 만들고 더욱 감질나게 만듭니다. 여인들의 치마 속곳을 파고드는 봄바람이 꽃향기 나는 들판을 거닐게 합니다. 봄은 그렇게 살랑살랑 왔다가 뜨거운 태양볕에 자취가 말라버리는 길 위에 떨어진 검붉은 목련꽃잎 하나와 같습니다.


짧은 순간을 즐기지 못하면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봄의 매력을 보는 능력을 겸비해야 이 찰나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찰나의 순간을 가로막는 녀석이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입니다. 1년 중 생명 활동의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장을 코로나가 막아섰습니다. 바깥의 저 햇살에 지금도 들판은 초록의 색을 입히고 있을 텐데, 안타깝게 색이 변하는 장관의 은은함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덧 벚꽃이 다 피었지만 피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담장 옆, 라일락이 꽃몽우리를 펴고 있음도 못 보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타고 넘어온 꽃향기로 인하여 꽃이 피었음을 간신히 눈치챕니다.

아! 봄의 화신은 이렇게 제 주변을 그저 스쳐 지나갑니다. 인적 없는 한 밤 중이라도 달빛에 흔들리는 벚꽃이라도 보러 야행이라도 가야 봄꽃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4계절 중에서 한 계절을 본의 아니게 잊고 지나가는 이변의 현장에 있습니다. 조금 더 참아내고 이겨내서 다시 올 봄을 맞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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