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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9. 2022

너는 커피 맛을 아니? 난 잘 모르겠어!

이 아침, 사무실에 들어오는 여러 직원의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가 들려있다. 날이 차가워지긴 했나 보다. 아아보다는 뜨아가 대부분이다. 얼죽아를 고수하는 직원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커피 브랜드를 보니 회사 건물 바로 앞에 있는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다. 회사가, 전절역을 올라오면 바로 연결되는지라 제일 많이 들러서 커피를 사게 되는가 보다. 그럼에도 가끔은 다른 커피 매장의 종이컵들이 보인다. 각자 선호하는 커피 맛이 있다는 것이다. 조금 걸어가서라도 자기 취향에 맞는 커피를 사 가지고 온다.


나는 아직도 커피맛을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아침 출근길에 테이크아웃 매장에 들러 커피를 사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커피를 안 마시는 것은 아니다. 오전에 차 한 잔, 커피 한 잔은 꼭 마신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차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일종의 루틴이자 의식(ritual)이다. 꼭 맛과 향에 집중하여 마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나 작업을 하기 전에 준비운동처럼, 혹은 차나 커피를 마시는 잠깐의 멈춤 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한눈팔기의 도구로 사용한다.


도구로써 차와 커피가 작동하면 맛과 향은 아무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다. 그저 책상 위에 놓인 컵에 담긴 물에 지나지 않으며 색깔이 노란지 갈색인지 정도만 다를 뿐이다. 매일 아침 마신다면서 너무 인정머리 없고 각박한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싸구려 차와 인스턴트커피만 마셔서 그런지도 모른다. 특별한 맛을 추구하는 탐미주의보다는 보편적인 대중적 익숙한 맛에 빠져있어서 그런 경향이 강할 수 있다.


남들은 스타벅스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근무하는 서소문만 해도 스타벅스를 비롯한 폴 바셋, 탐앤탐스 등등 대형 커피 전문점이 다 들어서 있고 사이사이에 신규 커피 브랜드 매장을 비롯하여 테이크아웃 전문점들이 건물마다 있고 심지어 가판대에도 깔려 있다. 스타벅스는 200여 미터 거리에 매장이 3개나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있는 와중에 본인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 귀신같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점심식사 약속으로 나갔다 의례적으로 들리게 되는 카페는 앉을자리가 있는가가 제1 조건이다. 어차피 커피맛도 구별을 못하기에 선호하는 매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만 커피맛을 구분 못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가만히 최근 업무상 약속으로 만났던 사람들과 어디서 음료를 마셨는지를 되돌아보면 중구난방이다. 맛을 추구했다면 특별한 매장을 계속 찾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뭐 특별히 본인이 선호하는 매장을 가고 싶었겠지만 상대방의 취향에 맞추느라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마실 수 도 있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하다.

차도 그렇고 커피도 마약이다. 카페인의 중독성이나 금단증상이 미약하고 4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1/2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있어 각성효과 외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의 위험성도 없기에 인류가 공인한 마약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군대 보급품으로 커피를 처음 사용하여 병사들의 전투력을 높였고 뜨거운 열사의 중동에서는 해가 지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밤의 시간 동안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로 종교적 수행을 돕는 각성 음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잠을 깨워주고 산만했던 정신을 바싹 차리게 하는 각성의 음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 바리스타들이 표현하는 그윽한 꽃향기와 농밀한 단 맛, 그리고 부드러운 산미와 복합미를 느끼기에는 내 입맛은 천박하다. 그저 쓰고 시다 정도의 농도만을 감지할 뿐이다. 싸구려 입맛인 것이다. 그래서 선호하는 커피 브랜드도 없다. 커피에 크림을 얹고 때론 코냑을 넣어 위장을 하여 맛을 증강시킨 종류도 있겠지만 치장한 맛 또한 선호하지 않는다. 


"커피 맛도 모르고 마신다고? "정신을 명징하게 하는 그윽한 커피 향을 모른다고?" "커피맛에 너무 미개한 거 아니야?"라고 다그칠지 모르지만 맛은 자기 입맛에 맞는 게 최고다. 개인 취향이니 천차만별로 다르다. 경중을 따질 수 없고 우열을 비교할 수 없다. 맛과 향은 그런 것이다. 있는 그대로다. 맛과 향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의미를 담아내면 더 감미로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맛과 향에도 '그럴 것이다'라는 최면을 걸면 그렇게 느껴질까? 불행히도 맛과 향에는 최면을 걸 수 없다. 맛과 향은 분자이기 때문이다. 맛은 혀에, 향은 코의 감각세포에 닿아야 알 수 있는 화학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책상엔 차가 한 잔 놓여 있다. 글을 쓰는 한 시간여가 지나 따뜻함에서 미지근함 쪽으로 기울어 있다. 차를 비우고 맛도 모르는 커피를 채우러 가야겠다. 나에겐 그저 아침 시간을 대하는 의례로 작동하는데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커피는 "글을 정리하고 일의 시간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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