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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1. 2022

그렇게 꼰대가 되어 있었다

최근 MZ세대 직장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단어들 중에 Quiet Quitting(조용한 퇴사?)이 있다. '조용한 퇴사'는 회사를 조용히 그만둔다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에서 근래에 유행하던 '워라밸(work-life balance ;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이라는 단어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워라벨'이 일과 삶의 가치 전환에 대한 고민이라면 '조용한 퇴사'는 가치 전환에 따른 행동강령의 연장과 같은 의미로 읽힌다. "일에 매몰되어 번 아웃되지 않기 위해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주장일 테니 말이다.


어떤 세대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단어나 용어가 있을 때는 왜 유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을 들여다봐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공감하는 어떤 분위기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꼰대의 시각과 조직의 논리로 바라보면 황당무계한 주장처럼 보이겠지만 젊은 세대가 고개를 끄덕일 때는 왜 그런지 살펴봐야 한다.


꼰대와 관리자의 시각으로 Quiet Quitting을 바라보면 '업무 태만'으로 보인다. 가장 퇴사시키고 싶은 직원의 유형 1위가 '시키는 일만 적당히 하는 직원'인데 quiet quitting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바로 '받은 만큼"의 양에 대한 가치 판단의 차이다. 얼마만큼의 연봉이나 월급이 '일한 만큼'의 보상으로 적절할 것인지에 대한 잣대를 서로 다른 눈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매출 및 수익에 대한 정량적 숫자를 산출할 수 있는 업무가 있고 제품 개발과 같이 결과물로 보여주는 일도 있다. 정량적으로 결과가 보이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quiet quitting이 나름 통제 가능한 소심한 위안이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많은 업무들이 숫자로 보이기에는 애매한 정성적 업무로 이루어져 있다. 정성적 업무로 평가를 받는 업종 종사자의 경우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대부분 정성평가로 업무 KPI를 하는 분야의 사람들은 자신은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quiet quitting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운 조건이다. '적당히'란 단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봐야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신이 쌓이게 된다. 나만 혼자 고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 스스로 들어갔다면 비록 계약관계이긴 하지만 들어간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월급쟁이는 적어도 자기가 받는 연봉이나 월급의 3배 이상의 실적은 달성해 내야 한다. 그것이 월급쟁이의 책임이자 의무다. 자기가 받은 급여만큼만 생산성을 발휘한다고? 이런 발상은 무책임한 거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한을 행사하고 혜택을 누리려 한다면 가장 비호감적인 직장인이다. quiet quitting이 조직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벌어지는 행위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본인의 입장일 뿐이다. 조직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업무태만의 다른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받은 만큼만 일하려면 말 그대로 퇴사를 하고 자기 사업을 하면 된다. 자기 사업을 하면 자기가 한 만큼 벌게 되고 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영업을 하면서도 quiet quitting을 할 수 있을까? 적당히 소심하게 수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일 것이다. 자기 사업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업무 계획을 짜고 거래업체와 마시기 싫은 술도 마실 것이다. 그것도 기꺼이.


직업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 나의 삶에 정착을 시키느냐가 직장생활을 능동적으로 할 것인지, 수동적으로 할 것인지를 판가름한다. 소속되어 있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어떤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지가 조직원의 제1 조건이다. 조직이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퇴사하여 자신을 인정해주는 회사를 찾아가면 된다.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나가는 것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에 대한 최대한의 복수다. 퇴사해봐야 갈 곳 없고 오라는 곳 없으면 있는 조직에서 최선을 다해 능력을 보여주어 자신 연봉의 3배 이상을 벌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조직문화를 만들고 인간 냄새나고 동료애 풀풀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람 사는 사회와 조직의 관계는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다. 


불금인데 저녁 퇴근길에 간단히 호프집에서 딱 1시간만 맥주 한잔하고 가자고 젊은 직원들에게 제안을 해보면 아마 같이 갈 수 있다고 손드는 직원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직장문화가 많이 변했다. 코로나 영향이지만 부서 회식을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없다. "회식이 뭥미?"라고 되묻는다. 그딴 걸 왜 하느냐고 한다. 


꼰대들은 불금 저녁 퇴근길에 혼자 노바다야끼 꼬치집 앞에 서서 뜨끈한 정종 대포 한잔을 훌쩍 마시고 기울어져 가는 달빛 그림자 친구 삼아 코트 깃 세우고 집으로 간다. 생태탕 집에서 같이 소주를 마시고 어울리던 동료들은 다 퇴사를 했다. quiet quitting의 소심한 복수도 따라 해보고 싶지만 그것은 체질에 안 맞는 것 같다. 그렇게 꼰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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