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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22. 2023

바뀐 소리, 들어보셨나요?

오늘 아침 출근길은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니 걷는 길은 매일 같은 길이지만 귀를 열어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출근 루트에 약간의 변형을 주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봐야 정해진 몇 개의 출근 루트 중에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시청별관 뜰을 지나오는 경로를 택했습니다. 오늘 출근길 루트를 어제와 달리 한 이유는 소리를 듣기 위해섭니다.


눈치채셨나요?


아침 출근길, 귀로 들려오는 소리가 어제와 달라졌음을 말입니다. 어제 아침까지는 매미소리가 득세했었는데 오늘 아침은 귀뚜라미를 포함한 풀벌레 소리가 귓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깃들어 사는 생명의 소리가 달라졌다는 것은 온도가 바뀌었다는 증표입니다. 온도에 따라 생존의 절정 높이가 다들 다르게 맞춰져 있습니다. 온도 차이에 생존의 시계를 달리 맞춰 공생하는 기가 막힌 현장을 듣고 있습니다. 다만 듣지 못해 알지 못할 뿐입니다.


생명을 지배하는 자연의 제1조건은 바로 온도입니다. 골디락스의 지형적 위치를 점하는 이유도 바로 빛을 내는 항성과의 거리로 인해 정해지는 온도 때문입니다. 생명이 살 수 있는 온도, 그 안에 살아있다고 하는 생명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수천억 개의 은하와 또 그 은하 속에 수천억 개의 항성이 존재하고 또 그 항성 주변에 산재해 있을 행성들 속에서 아직까지 유일하게 생명이라고 하는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구입니다.


지구의 생명은 바로 태양이 만든 산물입니다. 세포가 파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 그 속에서 뽁짝이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싸움박질하고 있습니다. 더우면 덥다고 성질내고 추우면 춥다고 신경질 내는 인간이라는 속물이 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의 생명은 온도의 변화에 민감히 반응하고 대처합니다. 온도가 생명에 절대적 신이라는 것을 유전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귀전으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아침 온도가 바뀌었음을 증명해 내는 자연의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온도조차 말입니다. 절대적일 것 같은 온도조차 그 높낮이를 체감하는 생명들은 모두 다 다르게 체감하고 있다는 겁니다. 온도에 선을 긋고 눈금에 숫자를 부여한 것은 인간만이 그렇게 합니다. 

전철을 내려 덕수궁 돌담길로 접어듭니다. 여기는 아직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들립니다. 같은 서울임에도 사대문 안쪽의 온도와 밖의 온도가 현저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소리를 통해 감지할 수 있습니다. 발걸음을 좀 더 옮겨 시청별관 뜰로 향합니다. 매미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풀벌레 소리로 대체됩니다.


소리의 공존입니다. 온도의 공유입니다. 그렇게 자연은 섞여 있고 혼합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느 것이 차선이며 어느 것이 우월하고 어느 것이 열등한지가 아니라 그저 그 안에 함께 사는 모습입니다. 큰 소리에 작은 소리가 묻힐 뿐입니다. TV 소리가 장악하던 거실에 청소기를 돌리면 TV가 벙어리가 된 듯 보이는 현상과 같습니다. 같이 들리지만 한 소리만 듣게 되는 환청입니다. 여러 악기가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 소리만 듣고 싶으면 듣고 바이올린 소리만 듣고 싶으면 꺼내 듣는 청음의 귀재들도 있긴 하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그저 큰 소리만 귀에 들릴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24 절기 중 열네 번째인 처서(處暑)입니다.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입니다. 자연의 생명들은 기가 막히게 계절의 온도 변화를 먼저 알아차립니다. 때가 있음을 말입니다. 이때가 아니면 안 되는 숙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너무 더워도 안되고 너무 추워도 안 되는 때말입니다.


인간은 이때의 기간을 늘리는 능력을 알아낸 유일한 종입니다. 옷을 입고 에어컨을 틀고 난방을 하여 그때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래서 1년 내내 교미하고 번식을 하는 종으로 인위적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 특이한 종입니다. 자연에는 때가 있는데 그때를 무시하는 유일한 종으로 진화를 한 것입니다. 온도를 무시하고 극복해 낸 인간이 결국은 자가당착에 빠져 자연의 온도를 올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제 그 오르는 온도에 적응하거나 온도를 낮추어야 하는 임계점에 몰려있는 형국입니다.


그래도 아침 풀벌레 소리는 선선함의 대명사입니다. 폭염이라는 단어는 이제 들을 때가 지나가고 있음을 대변해 주는 소리였습니다. 그렇게 계절의 시간은 풀벌레가 먼저 알고 인간은 낮시간의 뜨거움만 기억합니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주변을 조금만 두리번거리거나 귀를 기울이면 계절의 변화가 이미 옷자락 스치는 바람처럼 다가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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