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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18. 2023

어처구니가 없네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힌 상황을 표현할 때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한다. 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로 알려진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맷돌의 손잡이는 '맷손'이다. 잘못 알려진 것이 사실화되어 정식 용어로 정착되어 있다. 잡귀를 쫓기 위해 지붕의 추녀에 흙으로 만든 동물이나 사람 모양의 잡상을 올린 것을 '어처구니'라고 하는 설이 그나마 유력한데 이것 또한 정설은 아닌 듯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이라고 되어있다.


단어와 용어는 그 사회에서 통용될 때 의미를 갖는다. 어원을 추적하여 근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되고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다.


오늘은 단어의 어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마주하는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왜 생기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만나는 일은 일상이 되어버려 그러려니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특히 정치판에서 주로 본다. 청문회 때 변명하는 어처구니없는 답변들이 대표적이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내놓은 임기응변들이 제대로 훈련되고 준비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잠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뱉은 거짓은 꼬리를 잡히고 그 거짓을 다시 감추기 위해 거짓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듣게 된다. 말이 꼬이고 논리가 사라지고 앞 뒤 문맥이 뒤섞인다.


사실 어처구니없는 일에서 벗어나려면 간단하다. 진실만을 이야기하면 된다. 자신이 쌓아온 소신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 된다. 그래야 말이 꼬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된 출발을 하면 어쩔 수 없다. 끝까지 어처구니없는 일에 휩싸이고 만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덮으려고 하니 더 어처구니없는 일로 덮을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의 모습이자 현주소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은 한 발 떨어진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보인다. 그 상황에 빠져있는 당사자들의 눈에는 잘 안 보인다. 보이는데도 그렇게 행동하고 발언한다면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 왜 그 상황, 그 분위기에 들어가 있으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에 무감각해질까?


유한성과 책임에 대한 강박관념, 권력의 맛을 놓기 싫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인 듯하다. 완장 찬 무게를 제대로 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수를 위한 정치와 정책을 펴지 못하고 조율하고 합의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모든 사람, 모든 국민을 다 만족시키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조금씩 양보를 하고 공통분모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미래를 위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 왜곡해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여기는 무뢰배들은 골목 건달이나 진배없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의 대명사가 정치판일 뿐,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벌어진다. 인간사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하지만 상식과 기본이 통하는 사회라면 그 빈도가 줄어들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하는 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영원히 존속하며 등장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감정과 정서의 지배를 받는 행동을 표출하는 데 있어 무한대의 확률로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숙된 사회의 척도를 재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발생빈도수를 보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 사회는 잔머리 쓰는 행태를 사회생활하는데 빠른 적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잔머리 쓴다 함은 자기 이득을 위해 법을 살짝살짝 어기는 편법을 쓰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36년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법을 어기는 것이 잠재적 긍정요소로 작동하는 요인이 되어버린 듯하다. 식민지배하에서는 법을 어기는 것이 애국의 길이다. 일정치하의 법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을 거쳐오면서 한민족의 DNA에는 법을 무시해도 좋다는 유전자가 각인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잔머리 굴리는데 비상한 민족들을 보면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를 받다 해방된 나라들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개인적 의견이지만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중국, 인도 사람들이 그렇고 베트남, 투르키에 사람들이 그런 듯하다.


인도가 영국식민지였던 시절, 코브라로 물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많자 코브라 머리를 잘라오면 보상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했다고 한다. 정책은 나름 성공적이어서 인명피해가 줄어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보상금 지급이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보상금을 노리고 코브라 사육 농장을 만들어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보상금 제도는 폐지되었고 쓸모없어진 농장 코브라가 전부 버려져서 오히려 정책을 시행하기 전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문제 해결을 위해 대책을 내놓았는데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현상을 '코브라 효과'라고 한다. 참 어처구니없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치와 제도, 법의 주변에서만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코브라 효과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현상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교통사고 처리 보험금 지급이 그렇고 전세 임차인을 보호하고자 만든 전세보증보험이 사기꾼들의 주머니 채우데 쓰이고 있는 것도 그렇다. 가깝게는 전철 안에서 큰 소리로 뽕짝을 듣는 아저씨부터 주차장에서 남의 차 앞에 파킹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사라진 사람에 이르기까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말 어처구니없게 만나게 된다.


내 언행이 타인에게 어처구니없게 비쳐지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정치인들만을 힐난할 것이 아니라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배려하지 못하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항상 만들어진다. 자신만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주변을 경계하고 신독(愼獨 ;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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