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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5. 2024

일상이라는 루틴에 약간의 변화를 줘보자

일상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일상(日常 ; routine)은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다. 매일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자기, 본인 하고만 관계되어 있다. 각자의 일상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일상이 있고 당신의 일상이 있고 그대의 일상이 있다. 일상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고 따져보지 않고 분류하지 않았기에 그렇다.


에너지 최소화의 법칙에 의하여 일상이라는 단어에 뭉뚱그려 범주화해 버린다. 나도 그러니 너도 그럴 것이다라고 재단해 버리고 나면 다음 에너지가 안 든다.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해 버리면 편안해진다. 특별히 에너지를 더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버린다. 실제로 그렇게 돌아간다. 나와 다를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다시 생각해야 하기에 복잡해지고 생각하는데 에너지도 든다. 범주화의 힘이자 범주화의 오류다.


요즘 계속 글에 등장하는 단어가 다층적이고 다원적이라는 수사다. 세상사 흘러가는 것을 들여다보면 정말 복잡 다난하다. 얽히고설켜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조차 분간하기 쉽지 않다.


아침 출근길 일상을 살펴보자. 약속된 전철 운행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 전철 플랫폼에서 두 정거장 전에 오고 있는 전철을 확인하고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이메일을 확인한다. 잠시 이메일 스크롤을 하는 사이 전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스크린도어 너머 빈자리가 있는지, 매일 같은 칸에 타서 다음 환승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는지를 재빨리 확인하고 출입문이 열리면 그 사람 앞에 가서 선다. 왕십리 환승역까지 다섯 개 전철역을 가면 되니 러닝타임 최대 15분 정도밖에 안됨에도 빈자리에 대한 시선은 유치하리만치 빨리 돌아간다. 그렇게 때론 앉아서 가기도 하고 내릴 사람의 타깃을 잘못짚은 날에는 서서 가기도 한다. 묘하게 앉아 갈 때와 서서 갈 때의 감정차이가 있음도 눈치챈다. 간사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나마 왕십리역에서 갈아타는 2호선은 항상 빈자리가 있는 편이다. 배차간격도 거의 2 정거장 차이로 촘촘하게 운행을 해서 그런가 보다. 아예 철로에 이동보도를 깔아 움직이게 하면 전철 기다릴 일도 없을 텐데라는 상상도 해보며 빈자리를 골라 앉는다.


나름 뜨문뜨문 좌석이 비면 사람 마음도 여유가 생기나 보다.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건너편 사람들이 무얼 하나 쳐다본다. 앞줄에 일곱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에 3명이 앉아있다. 남자 한 명에 여자 두 명이다. 그중에 한 명의 여자는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다. 나머지 두 명은 여지없이 휴대폰에 눈을 빼앗기고 있다. 내가 앉은자리의 양 옆으로는 좌석이 꽉 찼다. 왼쪽에 앉은 중년 여성분은 휴대폰 속 웹툰에 빠져 계시고 오른쪽 젊은 여성분은 쇼핑몰 검색에 몰입해 계신다.


만 인 만 색의 조화가 전철 한 칸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등장했다가 한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화석으로 박제되어 버린다. 


있는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일상이라 치부하고 넘겨왔던 것은 어떤 것이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이 현재는 또 무엇인가?


똑같은 루틴에 빠져 있으면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가 없다. 루틴 이외에 뭐가 있는지 두리번거려야 하는데 이 행위 자체를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하다. 당연하다. 에너지최소화 법칙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철저히 적용된다. 에너지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못 쓰면 영영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지배한다. 움추러들고 왜소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던 것만 하고 했던 것만 반복하는 챗바퀴만 돈다.


일상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아주 사소했던 것조차 한번 바꿔보는 것이다. 출근길을 매번 전철만 타고 다녔다면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가보는 것이다. 사실 이것조차 쉽지 않다. 출근시간에 못 맞출 것 같고 안 타던 버스 타면 멀미 날 것 같다. 어떻게 최적화시켜 놓은 출근 패턴인데 이것을 벗어나면 바로 지각일 것 같다. 출근길이 꼬이면 하루가 모두 꼬일 것 같은 불안감이 먼저 든다. 출근길 루틴을 계속 바꾸는 것도 아니고 한번 바꿔보는 것조차 못하는 이유다. 버스 타고 가다 보면 봄의 기운도 느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다. 땅 속을 달리는 전철이 보여주지 못하는 세상이 버스밖 세상에서는 보인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세상 모든 일은 행동이 결론이다. 해봐야 하고 나서야 하고 들이대보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 않고 나서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고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다. 항상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을 이야기하는 현실주의에 빠져있지만 움직이지 않고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당위성을 부여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나를 움직이라는 충고다. 지금 여기 안주하라는 소리가 아니고 지금 여기를 떠나 무엇이 됐든 하라는 권유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살아있다고 한다. 우린 그런 존재다. 태생이 그렇다. 움직이자. 움직이기 위해 생각하자. 일상에 조금만 변화를 주면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하다. 그게 사는 것이다. 내 옆에 다가와 있는 봄의 기운도 느낄 수 있다. 아무나 알아챌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신호가 있다. 움직여야 눈치챌 수 있는 신호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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