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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9. 2024

지하철역의 비둘기

전철역 지하 3층까지 들어온 비둘기는 날아왔을까? 걸어왔을까? 전철 타고 왔을까? 어떻게 이 깊은 지하에까지 들어왔을까?


가끔 출근길 전철역에서 만나는 비둘기를 보고, 드는 생각이다.


출근길 전철은 경의중앙선을 타고 오다 왕십리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한다. 경의중앙선은 지상에 플랫폼이 있고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2개 층을 내려와야 플랫폼이 있다. 2호선 플랫폼만으로는 지하 3층인 셈이다.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다소 복잡한 환승통로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이 2호선 플랫폼에서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지상에 있는 플랫폼에서 만나는 비둘기야 뭐 승강장에 캐노피가 덮여있다고 해도 양쪽 철로로 뚫려있으니 플랫폼을 어슬렁거리는 비둘기 모습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지하 3층에 위치한 플랫폼에서 마주하는 비둘기는 좀 특별해 보인다. 인간도 지하 3층 플랫폼까지 찾아내려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고 위치 사인보드를 계속 주시하며 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데 비둘기도 비슷한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플랫폼에는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어 있어 철로 쪽으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인간처럼 계단을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과연?


그럴리야,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비둘기란 녀석은 그저 먹이를 주워 먹기 위해 헤매다 보니 어쩌다 지하 3층까지 내려왔을 것이 틀림없다.


지하 3층 플랫폼에서 만나는 비둘기도 의외지만 보는 순간 "재는 어떻게 바깥으로 나갈까?"가 더 궁금했다. 들어오는 거야 어떻게든 들어왔다고 치자. 나갈 때는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출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연찮게 막 돌아다니다 보면 한 층 씩 한 층 씩 위로 올라가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 정도 확률을 믿고 거기까지 들어왔을 리는 만무하다. 매일 아침마다 플랫폼에서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면 들락날락하는 것이 틀림없다. 영리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매번 똑같은 비둘기를 플랫폼에서 보는 것도 아닐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개체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지하 3층까지 내려오는 비둘기들의 적응력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지하 3층에는 비둘기들이 먹이활동을 할만한 노점도 없고 베이커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깊은 지하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먹이의 유혹이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환승하는 중간 2층 구간에는 베이커리가 2개나 있고 김밥집도 있다. 간혹 인간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을 만큼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지하 2층을 어슬렁거리던 비둘기들이 계단 통로를 타고 지하 3층까지 가끔 내려와서 눈에 띄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물들은 환경에 적응해 끊임없이 자기의 생존조건을 맞춰간다.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연계의 철칙이다. 이 환경적응은 강하고 똑똑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방향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열성 형질이라도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으면 그것이 살아남는다. 


비둘기의 날개는 제한된 공간인 지하세계에서 살아남기에는 적당한 도구가 아닌 듯하기도 하다. 아마 좁은 공간을 박쥐처럼 비행하는 기능을 탑재하는 쪽으로 적응할 것으로 보이며 이 빠른 속도감으로 다른 동물들보다 먹이에 빨리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간이 구축해 놓은 도시에 가장 잘 적응하는 야생동물이 되고 있다.


서울의 도심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야생동물 중 가장 번성한 종이 비둘기와 고양이인 듯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한 야생종들의 사투는 만만치 않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철저한 서울시내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음식물 찾기가 들판에 떨어뜨린 볍씨 낟알 찾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던져주는 빵조각과 강냉이에 의지하기에는 생존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둘기가 지하 3층까지 내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먹이가 보이는 어디든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존재는 항상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거부감이 없다. 의외의 장소에 짜잔 하고 등장하거나 눈에 보이면 다소 의아스럽다. '재는 왜 저기에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이자 거부감이다. 하지만 3자의 시각일 뿐이다. 당사자는 반드시 필연에 의해 그 자리에 있게 된다. 진화는 외부적 우연을 내부적 필연으로 바꾸는 현상이다.


조만간 비둘기도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전철을 같이 탑승하고 내릴 수 도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인간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남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하철에 적응하고 나면 비둘기도 키위처럼 날개를 퇴화시키고 두 발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놈이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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