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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1. 2020

비 다녀간 아침의 의미 찾기

지난밤에 비가 다녀갔습니다. 국지성 호우인지 안 온 곳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며칠 더웠던 기온을 많이 데려갔는지 이 아침은 선선한 바람과 맑은 하늘이 비의 고마움을 대신합니다. '비'라는 단어가 이렇게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주변에 수없이 많은 것들은 그저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마는 인간의 범주화 능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는 물입니다. 생명의 원천임에도 우리는 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질 않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저 구름이 

수증기인 기체인지 물방울인 액체인지 조차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저 구름은 물방울이 모인 액체 상태입니다. 곧 여러 구름들이 모여 무게가 더해지면 어젯밤처럼 대지로 내려올 것입니다. 당연히 있어왔던 존재 정도로만 알고 있기에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 상의 세상 만물을 있게 한 근본임에도 그저 목마를 때 찾고 세수할 때 찾는 존재 정도로만 '물'을 대해 왔습니다. 노자는 최고의 선을 물에 비유해 '上善若水'라 했습니다. 물은 만물의 근원인 동시에 인간의 덕을 비유하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그 덕성을 알지 못하고 무시해 왔던 것입니다.

비가 내린 덕분에 선선한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 절약으로까지 연결됩니다. 무한대의 현상 속에 펼쳐지는 순간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삶의 연결고리가 되고 의미가 되고 행동이 됩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연결되고 이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합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부각할 수 있습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창조의 뜻과도 상통합니다.


의미가 확실하고 확고하려면 용어의 정의가 정확해야 합니다. 의미가 전달된다는 것은 그 의미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배합과 배열이 이해가 가능하고 공통된 뜻으로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항상 사전을 옆에 놓고 단어의 뜻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도록 교육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육이 소홀히 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사전 찾아보기"를 통한 단어의 개념과 의미의 정확한 이해입니다. 요즘 세대들은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용어를 구사하고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단어가 갖는 정확한 개념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의미를 공유하지 못하고 겉도는 오해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나 표의문자인 한자를 한민족 2,000년 역사 동안 사용해 오면서 일상생활 용어의 80% 이상을 한자음을 차용하여 쓰고 있음에도 그 뜻도 모르고 쓴다는 것입니다. 용어의 혼동과 혼선은 결국 같은 단어를 놓고도 서로 다른 뜻과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혼돈이 바로 여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제 한자가 차지했던 부분을 영어가 빠르게 대신하고 있지만 역시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의미를 모르는 소리로만 말을 하게 되고 결국은 알아듣는 사람과 못 알아듣는 사람으로 구분되게 됩니다. "오늘 웨더가 레이니 해서 마인드가 아주 글루미 하다"라고 표현하면 대충 알아듣기도 하지만 영어 단어의 뜻을 모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나 말이 아닌 글을 영어가 아닌 한글로 위와 같이 표기해 놓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언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유효하고 의미를 갖습니다. 민족적 국가적 범위 그리고 그 언어가 통용되는 지리적 범주 내에서만 유용합니다. 미국에서 한국말로 아무리 '수박'이라고 이야기해봐야 알아듣지 못합니다. 수박이라는 실체를 놓고 수박 수박 해야 그제야 '저것을 수박이라고 하는구나'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실체도 없이 한국말로만 '수박'이라고 외쳐봐야 알아들을 수 도 이해할 수 도 없습니다. 바로 이 언어가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고 생각을 하게 하는 발로입니다. 한국어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고가 지배하는 언어이고 영어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고가 지배하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의 방향이 생각의 방향까지도 결정합니다.


비 내린 후의 청명한 아침 풍경으로 인해 물의 물성을 넘어 언어 교육의 현장으로까지 글의 의미가 확대되었네요. 빈 곳을 채우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의 특성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비는 감성을 확대시키는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봅니다. 비의 감성을 받아, 하늘 위에서 내리지만 시선은 비의 방향을 따라 아래로 내려 부하 직원들과 제자와 자녀들에게로 향하는 아침이었으면 합니다.


시원한 커피나 차 한잔 건네주며 힘찬 하루를 같이 시작하심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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