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항상 뒷골을 잡고 있는 것이 어떤 단어를 끌고 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각각의 뜻과 의미가 있고 비슷한 단어조차도 그 뉘앙스에 맞는 위치가 있다. 어떤 상황 어떤 때에 어떤 단어를 가져오고 들이대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문장의 전개가 만들어진다.
심지어 써놓고 던져놓으면 사람에 따라 또다시 각각의 감정과 지식과 지혜를 덧붙여 읽어낸다. 그래서 글은 무한의 창작을 이어가는 도화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글은 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고 명시하는데 방점이 있다. 말로 하여 허공에 흩어져 나중에 앞뒤 문맥을 이어 붙이느라 혼선을 빚는 일 없이 써놓고 새겨놓으면 명약관화하게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쓰고 조약을 맺어 협정문을 쓰고 기명 날인하여 쓰인 문구에 서로 합의했음을 증명한다. 단어 하나 문구 한 줄에 치열하게 논쟁하고 합의를 거쳐 작성되는 이유다.
법전과 계약서에 나열된 문구들의 엄중함을 넘어, 일상에서도 이 단어 선택 때문에 헷갈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욕망과 욕심, 사랑과 집착, 똑똑함과 교만함, 당당함과 거만함, 솔직함과 직설적과 같은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을 바꿔 사용하면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욕망(慾望 ; desire)은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며, 욕심(慾心 ; greed)은 '어떠한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두 단어 사이의 간극에는 '부족함'을 경계로 두고 있다. 욕망의 상태는 부족하거나 없는 상태를 채우고자 하는 것이나, 욕심의 상태는 이미 가지고 있으나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과한 탐욕이 차지하고 있다. 욕망은 꿈을 만들고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실천욕구를 추동하나, 욕심은 단테의 신곡 제4지옥에 해당할 뿐이다. 욕심은 끊임없이 모으기만 하고 인색하게 만드는 탐욕의 근원이다.
사랑(love)과 집착(執着 ; obsess)도 헷갈리면 안 되는 단어다. 무수히 많은 경계의 단어들이 있을 테지만, 사랑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인정해 주는 인과의 상태를 존중하는데 반해, 집착은 자기의 생각에 상대를 가두려고 한다. 심리적 지배로 통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 ; 가스등 효과)도 집착의 한 부류일 듯싶다.
똑똑함(smart)은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뜻이고, 교만(驕慢 ; arrogance)은 "잘난 체하는 태도로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을 뜻한다 똑똑하면 감탄을 자아내지만 교만하면 인간말종으로 보인다.
또한 당당(當當 ; proud)함은 자존심의 발로이지만 거만(倨慢 ; arrogant)은 자만심의 표출이다. 솔직(率直 ; honest) 한 것은 정중함의 표현이지만 직설(直設 ; plain speaking)적인 것은 무례함일 수 있다.
비슷한 듯 하지만 문장에 들어와 기능어로 작동하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절대 헷갈리지 말아야 할 단어이자 가슴속에 명심해야 할 단어들이다.
인간의 마음은 야누스와 같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떤 얼굴을 들이밀고 내보일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보이게 되고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욕심과 교만과 거만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곤 한다.
철학자 니체 조차도 '푸줏간 앞의 개'라 했으며 괴테도 '파우스트'에서 인간의 이중성을 놓고 "아! 내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살고 있구나!"라고 했다.
나는 마음의 이중성 중에서 어떤 단어를 끄집어낼 것인가? 사랑과 당당함을 끄집어내면 생각이 온화해지고 밝아지고 가슴을 펼쳐 맑은 공기를 마음껏 흡입할 수 있게 행동을 하게 된다. 단어가 생각을 만들고 행동을 만든다.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와중에 툭툭 걸려드는 부정의 단어들이 떠오를 때는 과감히 고개를 흔들어 떨쳐내야 한다. 그 단어들이 나의 존재를 규정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말과 글은 엄중해야 하고 행동은 신독을 통해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일이고 나의 존재를 바르게 하는 일이다. 전문가에게는 전문가의 용어가 있고 조폭에게는 똘마니 양아치의 속어가 있다. 말과 단어가 곧 그 사람의 존재를 규정한다. '나'다워야 하고 '나'를 드러내는 말과 단어를 골라 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