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옆에 샛길을 내는 인간들

by Lohengrin

다소 긴 추석 연휴 잘 보내고 출근하셨나요? 오늘내일까지 이어서 연차휴가 내고 계속 쉬고 계신다고요? 최고의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고 계시겠네요. 아니라고요. 직장을 그만두고 계속 놀고 있어 오히려 명절이 지긋지긋하다고요? ㅠㅠ


그래도 직장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5일을 이어서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기회들이 거의 없기에 어떻게 알차게 놀아볼까 가슴 설레며 기다려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 사람마다 다른 입장이고 처지이겠지만 말입니다.


이런저런 입장 다 집어치워 봅시다. 어차피 그냥 쉬도록 명명된 5일이었기에 어떻게 보냈느냐에만 집중해 봅시다. 그것도 자기의 시간에만 말입니다.


저는 다음 주 화요일에 건강검진을 예약해 놓은 터라 일단은 추석 연휴 동안 운동을 하는데 집중해보고자 했습니다. 건강검진은 평소에 하던 대로 술 마시고 늦게까지 유튜브보고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고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다가 피 뽑고 해야 진정한 숫자들을 받아 들 수 있다는 우스개 궤변도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건강검진을 하는 날짜가 정해지면 몸 도 사리고 안 하던 운동도 하고, 술도 안 마시는 게 보통 범인들의 시각이자 행동양태일 것입니다. 저도 뭐 이런 범인들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치 시험 때 좋은 성적표 받기 위해 되지도 않는 밤샘공부하느라 공부하는 척하는 수험생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게, 평소 하던 운동 루틴에서 조금 더 움직이는 것으로 했습니다. 비가 오면 아파트 계단 오르기 110층 높이를 하고 묵동천과 중랑천변 조깅하기, 망우산 둘레길 걷기 등으로 아침운동을 채웠습니다. 연휴 5일 동안 체중의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69-70kg 사이에서 숫자가 왔다 갔다 하는 수준으로 유지했습니다. 나름 현상유지 차원에서 선방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명절에 넘쳐나는 음식의 유혹으로부터 그 정도 버텨낸 것만으로도 사실 큰 성과라 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휴 마지막날이었던 어제 봉화산 둘레길 걷기를 하다가 다소 의아한 걸 봤습니다. 아시겠지만 요즘 웬만한 동네 주변 산들은 지자체에서 정말 조경들을 잘해놓았습니다. 온갖 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관리도 잘 되어 있어 산책하거나 운동하기 좋게 만들어놓았죠. 봉화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봉화산은 높이가 160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동쪽에서 망우산 망우리고개를 넘어 청량리, 동대문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하여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 둘레를 뺑둘러 4km가 조금 넘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둘레길의 오솔길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구간구간 나무데크와 계단을 만들어 정말 편리하고 쉽게 숲 속을 산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이 봉화산 둘레길을 뛰어다니기 시작한 것도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봐야 1년에 대여섯 차례 정도 될까 말까 하지만 말입니다. 저에게는 여러 조깅코스 중 하나여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제 둘레길을 걷다가 아주 이상한 길을 봤습니다. 오솔길 훼손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데크길 옆으로 새로운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데크길로 안 가고 그 오솔길도 다니고 있습니다. 봉화산 둘레길 전체에 데크길로 포장해 놓은 것은 아닙니다. 경사가 심해 흙이 많이 파여나가 나무뿌리가 겨우 버티고 있는 구간 등에 설치되어 있어 전체 구간 중 데크길과 계단은 전체 구간 중 1/3 정도 되는 듯합니다. 그 데크길이 설치된 구간에는 여지없이 옆으로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작년까지도 이 데크길옆 오솔길이 눈에 안 들어왔었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만들어 다녔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오솔길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뻔합니다.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면 무릎관절 안 좋다는 심사가 작동했을 것이고 딱딱한 데크를 밟는 것보다 흙길을 가고 싶은 욕심 때문에 새로운 길을 옆에 만든 것입니다.

오솔길을 보호하고 자연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 놓은 보호 장치들을 우회하는 이 욕심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렇다고 내가 뭐 철저한 자연보호주의자도 아닙니다. 원리 원칙을 따지는 원리주의자도 아닙니다. 그저 합리적으로 기본적인 상식을 갖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그런 사람일 뿐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편법을 쓰고 법을 악용하는 인간은 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을 뿐입니다. 멧돼지처럼 자기들의 길을 따로 내서 산을 누비는 인간들을 비상식적인 인간으로 볼 뿐입니다.


계단 오르는 것이 불편하거나 무릎 관절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산에 오르거나 둘레길을 걷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의 건강은 그렇게 아끼고 생각해서 별도의 오솔길을 따로 내는 인간들은 산에 오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건강관리 운동을 찾아야 합니다. 수영장을 가거나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관절에 무리가지 않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파크골프장을 가거나 말입니다.


"데크길 옆으로 오솔길 정도 내고 다닌다고 뭐 그리 길길이 씹고 난리야"라고 할 수 도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져 밟고 다녀 오솔길이 훼손되기에 만들어진 데크 계단이기에 그렇습니다. 자기 혼자 편하려고 옆길을 만들어놓고 다닌 길이, 이젠 데크길보다 더 넓어져 있습니다.


기본이 안된 사람들과 자기 혼자 편하려고 편법을 쓰고 우회에 익숙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미래가 없습니다. 당장은 편하고 자기에겐 이득이겠지만 사회 전체를 야금야금 좀 먹는 벌레일 뿐입니다. 둘레길 옆에 난 오솔길을 보면서 우리 시대 마음의 오솔길이 난 것의 반영을 보고 있는 듯해서 착잡했습니다.


아침 운동하다 오지랖이 인간 본성에 까지 튀었습니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 둘레길로 조성된 길 외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치던지 해서라도 숲길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할까요? 철조망은 미관에 안 좋으니 샛길마다 작은 플래카드라도 걸으라고 할까요? 그냥 선한 인간 본성에 맡겨볼까요? 사실 이 샛길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강제하지 않으면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의 처절한 현실입니다. 너무 비관적인가요?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자 우리 주변의 모습입니다.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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