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보리 Nov 07. 2021

마흔의 면접

2. 영혼 펌프

어떻게? 과연 어떻게?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는 자신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딘가에선 먹잇감이 된다. 심지어 상냥하기 그지없게 생긴 새에게도 쪼이기 마련이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행되는 일이지만, 나는 지금 확신과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할 두 아이의 엄마란 존재가 아니던가. 엄마가 쭈굴 해지면 자식들은 기똥차게 알아보고 눈치보기 마련이다. 어디선가 공기 펌프를 부지런히 밟아서 내 영혼의 그늘진 곳에 신선한 공기를 넣고 봉긋하게 펴줘야 한다. 공기 펌프를 찾아야 한다.


메일을 보냈다.

'혹시 테스트 점수를 알 수 있을까요.'


탁탁탁, 이메일에 이 문장을 처넣고 나니,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지금 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졌다. 아주 신선한 공기가 서서히 주입되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는 이 회사가 실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게 제법 감사하다고도 느껴졌다. 기대하는 수준의 실력이 있고 그것에 대한 테스트와 기준이 정확히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그걸 알고 싶어졌다. 그들의 맥락 속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인지.


내 번역 실력이 어느 부분에서 부족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지, 즉 어느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비록 믿는 절대적인 신은 없지만, 그동안 읽어왔던 좋은 글귀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서 마치 종교와 같이 어떤 에너지가 내 안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어릴 때, 한창 구직활동을 하던 때에 이런 내적인 단단함이 있었던가. 한 번도 익숙해지지 않던 내 나이가 꽤 의젓하게 느껴졌다. 그래, 다른 말로 뻔뻔하다고 해도 좋다.





점수를 말해줄 수 없지만 이러이러한 에러가 발견되었다고 매우 친절하고 상세한 메일이 돌아왔다. 휴. 많기도 많이 발견되었다. 정답이 적힌 파일을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응급 지혈하듯 꾸욱 눌렀다. 메일의 끝에 혹시 다른 영역의 테스트에 관심이 있는지 내 의향을 물어보았다. 만약 다른 영역의 테스트를 봤는데 그것마저 불합격할 경우를 우려해야 했다. 그 암울한 생각이 가지를 뻗쳐나가기 전에 신속하게 답장을 보냈다.


'네, 제안 감사합니다. 다른 영역의 테스트라도 다시 볼 의향이 있습니다.'

.

.

.


마치 메일을 주고받는 담당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

'또 불합격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공부하는 셈 치겠습니다.'

'시간 참 많으시군요'

'아니요. 사실 시간은 많이 없습니다. 그래도 내 능력은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내부적으로 의논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이전 01화 마흔의 면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