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보리 Nov 12. 2021

마흔의 면접

4. 조삼모사

"Mummy, I love you very much"
"I love you more"



아이가 아프니까 일을 시작할 경우의 '만약'을 위해 조사를 해봐야 했다. 오후 유치원에서의 픽업과 일을 할 동안의 방과 후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 한국의 외조부모는 말 그대로 한국에 있고 우스갯소리로 한 3시간까지 손주들과의 시간을 버틸 수 있다 하였다. 어쩌면 부모에게 거절당하고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영국에 있는 게 낫다 싶기도 했다. 시부모님은 은퇴를 하셨음에도 방문 시에도 플래너를 열고 스케줄을 맞춰봐야 하고, 사실상 정기적인 도움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결국은 남을 돈을 주고 고용해야 한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루틴마냥 훑어보던 페이스북 동네 커뮤니티 글들을 내려 읽어보니 역시 내니를 구한다거나 내니 고용 시의 상담글이 많이 올라와있다. 2년 전부터 핸드폰에 설치되어 있던 베이비시터나 내니를 구할 수 있는 OO애플리케이션,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용돈을 벌고 싶은 학생들이나 젊은 내니들을 부모들과 거의 실시간으로 연결해준다. 급한 경우에 유용하게 쓰일 것 같으나, 역시 아직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구인 포스트를 올릴 수 없다. 영국답지 않게 구인을 올리면 하루 이틀 안에 결정이 날 정도로 프로세스가 빠르다. 


정부에 등록되어 가정에서 다수의 아이들을 봐주는 차일드 마인더도 있다.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맡아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방과 후에 아이들이 또다시 집 밖으로 여기저기 돌기보다는 집에 와서 쉬었으면 한다. 어른인 나도 밖에서 사람들하고 복닥거리고 나면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이 조그만 아이들이라고 안 그럴까. 물론 나는 아주 극단적인 스타일로, 내일 외출 계획이 있으면 전날 밤부터 부담스러워 밤에 잠이 잘 안 온다. 유치원과 또 다른 가정집, 아이들의 면역력이 받쳐줄지도 의문이다. 일단 유치원 끝나고 또 누군가가 픽업해서 차일드 마인더에게 데려다줘야 한다는 것도 비효율적이고.


많은 영국인들이 그렇듯 약간은 런던의 외곽으로 빠지면서 같은 돈으로 큰 집으로 이사를 간 후, 오페어에게 방을 하나 주고 함께 살면서 아이들 학교 드랍과 픽업을 맡길 수도 있다. 하지만 24시간 편의점이 날 반기는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무언가가 필요하면 자차를 운전해 나가야 하는 수고를 기꺼이 할까. 도시의 모세혈관과도 같은 전철, 택시, 우버의 혜택이 사라지고 집 앞 필라테스, 집 앞 베이커리, 집 앞 커피숍 이 모든 편리함이 사라지게 된다. 짜장면 한 그릇도 자급자족이다. 득 보다 실이 너무너무 크다. 사실 그래서 지금 다시 내 일을 해보려고 하는 것도 있다. 애 둘 키우는 자급자족 전원생활 속에서 내 개인적 야망을 키우며 일을 하는 것은 감나무에서 배 떨어지길 기다리는 정도의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다시 클래식한 방법으로 돌아와서 내니를 소개해주는 웹사이트 OOOO에 가본다. 몇 년 전에 봤을 때보다 깔끔하게 업그레이드되어있다. 살고 있는 지역을 입력해 넣고 구직광고를 올려놓은 내니들의 리스트를 살펴본다. 잠시 헛웃음이 나왔다. 요 몇 달간 내 이력서를 본 사람들 심정이 이랬을까. 우선 신뢰가 가야 하는 프로필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곧 파티에 가거나 상반신에 걸쳐진 옷이 안 보이는 데이트 앱에 어울릴 법한 사진들이 보인다. 패스, 패스. 범죄 여부 조회 시,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고 현지인(남편) 말로는 어릴 때 범죄 기록이 있거나 할 거라고 했다. 아이를 돌보는 것과 무관한 마케팅을 공부한다든가 하는 사람도 패스, 패스. 사람의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 걸 보니 역설적으로 그 말이 얼마나 명언인지 새삼 느껴진다. 이 정도라면 차라리 보통 영국에서 구직시 그렇듯, 이 웹사이트도 사진을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한번 페이스북 동네 엄마들 커뮤니티를 가본다. 한국이라면 동탄 맘카페 같은 곳이다. 풀타임 내니가 있는데 아이 유치원을 반일에서 전일로 늘리기 때문에 내니 타임이 비는데 비는 시간에 대한 보수를 줘야 하는지에 대한 상담글이 떠 있었다. 일주일 40시간의 최소 근무시간을 맞춰줘야 하고 운이 좋으면 두 가족이 연합으로 내니의 타임을 나눠 쓰며 근무시간을 맞춰주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내니가 필요할 경우에 어떡할 것인가. 현실은 어른들이 짜 놓은 플랜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비는 시간에 육아 외에 집안일이나 요리를 분담할 것을 제안하는 코멘트도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는 오늘의 나처럼 아이가 아플 때와 빈번히 찾아오는 방학 때문에 풀타임 내니를 포기할 수가 없다고 한다. 엄마가 혹은 양부모가 모두 일을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양육기관의 도움과 거기에 추가하여 상시 대기조 인력이 필요하다. 또는 근무시간이 유연하거나,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양육 비용을 커버할 만한 금전적인 수입과 정신적인 보상이 부모 혹은 대개 엄마의 직장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요즘 너무나도 핫했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거기에 실력이 따라주고 자신을 온전히 던져서 노력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가. 


거기에 대비되어 숭고하게 박제되고 있는 엄마라는 이름의 나는 억만 겹의 바다가 누르는 수압을 견디는 빛을 잃은 물고기가 되어 어느 이름 모를 외국의 해저 바닥을 티도 안 나게 빙빙 돌고 있는 것 같다. 푸른 해저를 휘저으며 눈부신 은빛 실타래가 풀리듯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탱탱한 멸치 떼의 우두머리마냥 아이키란 안무가는 엄마라는 주제로 파이널 무대를 선보였다. 그 무대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엄마는... 다 큰 딸들은... 눈물을 훔쳤으리라. 하지만 엄마의 눈물은 엔딩이 아니라, 그 눈물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꿋꿋이 나아가는 무소의 뿔 같은 시작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가보자. 만약에 일을 하게 될 경우,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들이 아프면, 방학은? 힘들 것이다. 힘들지만 방법을 찾아서 꿋꿋이 나아가야 한다. 복잡할수록 간단하게 문제를 뚫어보고 불필요한 생각을 끊어내야 한다. 방법을 찾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이전 03화 마흔의 면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