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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Nov 27. 2021

마흔의 면접

6. 클릭클릭클릭


제안해줘서 고맙다. 가능하다면 다음 주 월요일에 A영역을 본 후에 통과한다면, 그다음 주 월요일에 B영역을 보고 싶다.


준비시간을 늘리고 조금 더 공을 들여서 정성껏 테스트를 본다면 좀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A영역이 보통 B영역보다 덜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두 영역을 보다가 할 실수를 줄이리라는 나름 비장한 각오에서다. 시험을 기다리는 자로서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넷플릭스에서 테스트 영역 관련 드라마를 본다. 대학 시절 만났던 남자 친구가 떨떠름하게 떠올라 보지 않는 류의 드라마였지만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셋이 필요하다. 몇 년 전에 일했던 서류를 검색하여 A영역과 관련이 있을 듯한 것들을 프린트하여 읽어본다. 


월요일이 밝아왔다. 밤새 테스트가 배정되었다는 메일의 도착 알림음이 핸드폰에 떠있다. 테스트를 보낸 쪽은 해가 더 빨리 지는 지구 반대편이었기 때문에 영국 시간으로 새벽에 메일이 도착한다. 월요일 아침 감사하게도 아이들 컨디션이 좋아 시간에 맞춰 학교와 유치원으로 갔다. 고학년까지 쭉 이어진 사립학교로 다행히 유치원도 함께 있는데, 첫째가 먼저 적응한 후 둘째 아이도 첫째 학교의 유치원으로 옮겼다. 함께 통학을 하니 아침이 훨씬 수월하다. 그렇게 아이들이 학교로 간 후, 아이들이 어떻게 등교했는지, 혹은 본인이 어떻게 얘들을 등교시켰는지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남편의 이야기를 잠시 듣는다. 도시락 싸고 아침 먹이느라 그릇과 음식이 널부러진 거실과 부엌을 치우면서 아이들이 남긴 불어 터진 시리얼을 입속에 대충 몇입 넣고, 내 컴퓨터가 놓인 화장대가 있는 침실로 올라간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남편인지 못 알아준다는 듯한 눈치를 주는 듯한 남편도 재택근무 중인 본인의 데스크로 간다. 


내 컴퓨터 마우스를 살짝 밀자 세상 근심을 잊을듯한 그야말로 그림 같은 그림이 스크린에 뜬다. 비밀번호를 탁탁탁 누르고 메일함을 연다. 도착한 메일의 링크를 누르면 해당 테스트가 입력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들어간다. 테스트 링크에 접속하여 최선을 다했다.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런 것 같다. 무얼 시작하든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질 않는다. 그래서 시작은 참 쉽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이토록 전략적이고 천재적인 접근을 한 후 바로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나는 자기개발서에 나올법한 그런 위대한 사람일 테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수요일쯤 받은 이메일은 그 '어렵지 않은데' 하던 A영역의 테스트를 보기 좋게 또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어라, 이걸 어쩌지. 이제 정말 다음 주 월요일에 보기로 한 테스트를 잘 보아야만 한다. 마침 A영역에 거꾸로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많은데 그쪽도 테스트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이미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결과는 나락이라도 언제나 시작만은 호기롭게 하는 사람 아닌가. 어렵겠지만, 해 보겠다고 회신하고 이번에는 B영역과 같은 주 수요일로 스케줄을 잡는다. 이번에는 난이도가 높아서 테스트 시간을 늘린다고 해도 실력이 없다면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같은 선택 앞에서 마음가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정이 나온다. 




그리고 차례로 월요일 B영역, 수요일 A영역 영어 테스트를 마치고 대망의 완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 이 버튼으로, 정확하게는 이 테스트로 내 자아 성찰과 노후 자금이 결정 난다고 생각하니 두근거리지만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 지금 결정의 순간을 미룬다고 해서 결과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결과가 가혹할지라도 후회 없이 쏟아내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는 내 맘에 최소 '정신 승리'라는 깃발을 꽂을 수 있으니까. 돌이킬 수 없는 완료 버튼을 눌러 강을 건넜다. 





'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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