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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Nov 27. 2021

마흔의 면접

7. 타령이 절로

테스트 완료라는 버튼을 누르고 주말이 되었다. 테스트 결가를 기다리는 것이 주말이라 다행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앉아있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니 걱정 따위  틈은 없다. 기저귀를 뗐지만 아직 똥은 기저귀에 싸는 둘째의 이틀 묵은 구린  기저귀를 치워 주고,  것도 아닌 걸로 서로 양보는 죽어도 못해서 싸우는 아이들을 뜯어말리고, 청각에 문제가 있는지 오줌 마렵다는 둘째 목소리가  들려 바닥에 오줌을 싸놓게  남편 앞에서 화내지 않고자 마음의 종을 울려 진정시키고 나면, 아침은 시리얼로 때운다 해도 점심, 저녁은 따뜻한 밥이라도 해먹이거나 외식을 가거나   돌아와서 목욕시키고  싸우는  말리다가 비행기도 태워줘야 하고 인형놀이도 해줘야 하고 하다 보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생존을 위해 토요일 아침이면 집에서 나와 요가를 하러 탈출을 감행한다. 왜인지 모르지만 물이 흐르는 부처상이 있는 동네 요가 스튜디오, 나에게 그곳은 그 누구의 교회이고 절이다. 토요일마다 찾아가는 내 마음의 안식처.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주말에 무언가 영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한다고 본다. 그뿐인가. 결혼 전 일을 그만두고 요가를 시작하고 2cm나 키가 컸다. 사라진 내 키도 찾아준 고마운 요가가 이제는 나의 영혼의 키까지 늘려주고 있으니까.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나와 내 몸에만 고요히 집중하고 돌아오면 다시 롯데월드의 등 푸른 생선 같이 팔팔한 대학생 직원처럼 아이들과 놀 준비가 된다.   


가만있어 보자. 등 푸른 생선이라. 오늘은 고등어를 사다가 조림을 해줘야겠구나. 커뮤니티 센터를 끼고 돌아 골목을 따라 늘어선 야채 과일 가게, 치즈 가게, 육류 가게를 지나 끝에 있는 해산물 가게 앞에 도착한다. 각진 얼음조각들 위에 주황빛 윤기 나는 연어, 두툼하니 실한 가리비와 타이거 새우, 뽀얗고 매끄러운 오징어 그리고 빵빵하게 배가 차오른 바닷 빛깔의 고등어 한 마리. 한 마리밖에 없는 것이 아쉽지만, 영국인 남편은 고등어를 즐겨 먹지 않으므로 대신 양 갈빗살을 두 개 따로 사서 네 가족 식단을 세운다.


자고로 고등어조림에는 무가 들어가야 하는데 나오는 길에 야채 과일 가게를 들러 훑어본 결과 무가 없다. 피터 래빗에 나오는 동그랗고 조그만 빨갛고 하얀 래디쉬는 잘 보여도, 튼실한 종아리같이 생긴 무는 없다. 실망스럽지만, 으레 있는 일이다.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해 먹고 살 수는 없다. 어제 마침 감자를 사놓았지 하고 안도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누가 그 감자를 사놓았던가. 한참을 부엌을 뒤지다 내가 산 것은 감자가 아닌 고구마였음을 깨닫는다. 으레 있는 일이다. 다시 냉장고를 뒤져 호박, 고구마, 양파, 얇은 파를 꺼내어 얼마 남지 않은 엄마가 보내준 고운 고춧가루로 양념을 해 조린다. 보글보글.


일을 해서 무얼 할 것인가. 이렇게 따뜻한 밥 얘기들 해 먹이면 행복한 것을.


이라고 부질없는 타령을 속으로 되뇌다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 쌓인 주부 내공으로 다양한 메뉴 개발을 해놓은 것이면 충분하다 그만하면 되었다 하고 내 자신을 토닥거린다. 그렇게 이틀을 집에서 복닥거리고 6끼를 해먹고, 마침내는 일요일 밤이 오고 아이를 재운다. 불편한 자세로 온갖 소비를 부추기는 각종 세일과 신상품을 소개하는 이메일들만이 가득 찬 내 핸드폰의 메일박스를 열어보고, 밀린 인스타그램 피드를 본다. 오늘은 다행히도 공들인 주말을 보상하듯 아이가 일찍 잠에 빠진다.



'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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