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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Nov 17. 2021

마흔의 면접

5. 너는 모르지

아이 둘을 떼어놓을 생각과 함께 구직활동을 시작하고 나니 둥지를 떠나야 하는 슬픈 어미새마냥 마음이 심란하다. 아직도 애벌레를 물어다 씹어줘야 할 것 같은 이 소중하고 조그만 아이들을 도대체 누구에게 맡긴단 말인가 하면서 내적 갈등이 심하게 온다. 아무래도 남편이란 작자는 나의 이런 내적 갈등을 전혀 이해하지도 감지하지도 못한다. 



당신의 번역 경력이 A와 B에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이 일하고 싶어 했던 분야의 번역 테스트는 대실패 했지만, A와 B분야의 테스트를 볼 의향이 있는가? 함께 보겠는가? 따로 보겠는가?



똑 떨어진 번역 테스트 결과에 한대 맞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느냐고 용기 내어 물어본 결과 돌아온 이메일이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일과 내가 일하면 누가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라는 답 없는 고민은 고만하고 늦기 전에 이메일 회신을 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희한하게도 데스크탑의 키보드를 사용하여 이메일을 회신하면 기분이 좋았다. 하루 종일 만지고 있는 핸드폰의 터치 화면을 눌러쓴 글은 뭔가 감성적이었다. 핸드폰 타자는 인스타그램에는 어울리지만 구직 활동을 위한 이메일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자고로 키보드를 탁탁탁 쳐주면 감성을 누르고 이성을 올라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보낼 이메일은 매우 중요했다. 왠지 그런 것 같았다. 아주 구체적인 질문이다. 첫 번째 시험에 떨어졌는데 어떻게 다시 볼 텐가? 자네 자신 있는가? 우리 딸을 데려가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자신이 있는가 말이네... 의식이 갤럭시로 가기 전에 잡아와 붙들어멘다. 약을 안 먹겠다고 버티는 아이가 늦은 밤 잠들고 나서 내 PC(개인 컴퓨터, 이 말이 참 좋다)가 있는 화장대로 갔다. 키보드를 살짝 건드리면 세상 근심 따위 일시에 떨쳐내 버릴 듯한 세상의 아름다운 곳이 바탕화면으로 뜬다. 하지만 친절한 아들이 전원 버튼을 다 꺼놓았다. 발가락으로 전원 코드가 연결된 스위치를 눌러 켠다.    



제안해줘서 고맙다. 가능하다면 다음 주 월요일에 A영역을 본 후에 통과한다면, 그 다음 주 월요일에 B영역을 보고 싶다. 


잠시 생각하다 보내기를 클릭했다. 그 순간 핸드폰에 알림이 뜬다. 아이 방에 달려있는 모니터에서 소음을 감지한 것이다. 오늘 밤은 이빨도 못 닦고 잠들겠구나는 생각을 하며 나를 찾는 아픈 아이 방으로 총총총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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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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