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도 사랑해
콜록콜록콜록
2019년 전지구에 망할 역병이 창궐한 이래,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짧고 귀여운 팔꿈치로 3살짜리 딸이 터져 나오는 기침을 막기 위해 조그만 입을 열심히 가린다. 그 아이의 인생사 근 3년 동안 이렇게 목구멍이 간질간질 텁텁하고 불편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 치고 굵은 기침은 한번 시작하면 가끔은 작든 크든 토를 해야만 멈추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자 컨디션도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유치원에서 열이 나니 집에 데려갈 수 있는지 전화가 왔다. 사실 아침에 유치원을 보내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벨이 두 번도 울리기 전에 받았고 바로 뛰어나갔다.
자주 편도선이 붓고 본인이 아프면 알아서 약을 반갑게 먹는 아이와 아픈 적이 거의 없지만 아무리 아파도 약을 잘 안 받아먹는 아이를 보며 무엇이 더 다행인가 생각해보았다. 그 쓸데없는 생각을 제법 쌀쌀해진 가을보단 춥고 겨울보단 따뜻한 공기에 휘저어 뿜어내며 걸어갔다. 유치원에서 갖고 있던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가 연보라색 입술로 엄마를 보고서 여느 때와 같이 신나서 수다를 떤다. 그저 엄마만 봐도 좋은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아프다는 아이를 내 품으로 안아야 마음이 놓인다. 내가 3년째 젖을 물리는 것은 딸이 아니라 내가 분리불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도대체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아플 때, 그 타들어가는 마음의 똥쭐을 어떻게 버틸까.
동시에 핸드폰에 이메일 도착 알람이 울렸다. 당신의 번역 경력이 A, B 영역에도 있는 것을 이력서에서 확인하였다. 그쪽 테스트를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언제 테스트를 하겠는가? 한날 같이 혹은 따로?
아이의 보라색 입술을 보고 있노라니, 아침에 가기 싫다는 걸 간사한 젤리 몇 개로 회유하여 보낸 나를 시퍼런 황금 도끼가 찍어내리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그런 엄마를 다시 봤다고 어찌나 해맑게 고 몇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떠들어대는지. 연신 짧고 귀여운 팔을 구부려 나오는 기침을 틀어막으며. 길에 굴러가는 말똥만 봐도 꺄르르 꺄르르 우스웠던 10대를 지나, 가족과 관련된 감성적인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는 족족 눈가가 바로바로 축축해지는 근 40대가 되니 수다스럽도록 사랑스러운 조그만 연보랏빛 입술의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가 잘못했어'하며 대성통곡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버텼어. 딸 이제 집에 가자
1평도 안 되는 형무소 같은 조그만 방 데스크에서 2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남편이 능숙하게 온라인으로 코로나 검사를 예약하였다. 마침 20분 후의 테스트 예약이 가능했고, 본인도 며칠 후에 오피스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도 딸도 검사를 받으러 갔다. 이제 아들을 픽업하러 가야 한다. 한 달마다 편도선이 부어오르던 아들은 올여름방학 동안 한국살이를 하고 온 후 좀 단단해진 느낌이다. 영국인 남편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조금씩 개구지고 다부져가는 다섯 살 아들이 보온도시락이 든 도시락 가방을 어깨에 이고 학교 계단을 올라온다. 세일 때 산 축구화는 오늘도 신발끈이 풀어져있다. 나는 딱 한놈만 패, 이런 스타일의 아들은 이 축구화가 맘에 들었으니 당분간 이 신발과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가장자리로 이동하여 풀어진 신발끈을 묶어주었다. 축구선수가 풀리지 않게 축구화 끈 묶는 법을 유튜브로 알려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을 고쳐 메주고 다시 부드럽고 따뜻한 아들의 손을 잡고 간다.
"Mummy, I love you so much."
이렇게 사랑 고백하는 아들, 학교에서 픽업해 집에 오는 길에는 이렇게 달달한 말을 해주곤 한다. 내가 일을 해서 픽업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긴다면 이런 순간이 없었을 텐데 싶었다. 나 말고 픽업을 올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이 감정을 느낄까, 그렇게라도 사랑을 주는 사람임에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그게 내가 아닌 것을 서운하게 느끼는 미저리 엄마가 될까? 우선 오늘 그리고 며칠, 아픈 아이를 데리고 버텨야 미저리가 되든 워킹맘이 되든 한다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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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