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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Nov 06. 2021

마흔의 면접

1. 핸드폰이 울리다

뚜뚜뚜 뚜뚜뚜


모르는 영국 번호가 핸드폰 위에 뜬다. 하프텀 방학을 맞은 두 아이들이 나를 보고 응석을 잔뜩 부리려고 하는 그런 찰나에 온 전화, 아이들이랑 있으면 보통은 핸드폰이 아무리 시끄럽게 울려대도 안 들리거나 귀찮아서 모른 체 하기 일쑤인데 웬일인지 그 정신없는 공간을 뚫고 전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에도 이걸 받아 말아 하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상쾌하게 받았다.


"Hello!"


"어디어디에서 전화했습니다. 누구누구씨 맞습니까? 원본 서류가 오늘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안 와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네에 안녕하세요. 네에 저 맞습니다. 아 네에 네에... 그런데 제가 영어 점수도 따로 없고, 보내지 못했는데, 서류를 낼 게 있을까요?"


'그 말은 제가 없는 서류라도 끌어모아 보내면 제가 진짜 뽑힐 가능성이 있는 걸까요?'

'경력 증명도 프리랜서라 증명서가 딱히 없습니다'


"네, 학위증명서와 비자가 어떻게 되고... 하는지와... 경력증명서 발급이 어려우면 담당자와의 이메일을 보내도 됩니다."


"아 네에 네에 알겠습니다. 오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 1달 전에 지원한 회사였다. 서류 접수 후 전체적인 채용 일정이 지연되었는데 면접 전부터 서류를 원본으로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문득 내 자리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용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상의 1인으로 활약하는 것이 아닐까. 나 말고도 많이 지원했을 것 같았고, 마침 다른 회사와 번역 테스트를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어떤 간절함도 줄어들었고.


내가 이런 통화를 하는 와중에는 유치원생 두 아이의 삐약삐약 엄마 찾는 소리가 0.1초 간격으로 폭죽 같이 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후에 어떻게 시간을 냈는지 분명하지 않다. 화장대에 화장품 대신 놓인 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가능한 한 이력서에 기술된 내가 실제 그 사람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끌어모았다. PDF 파일인데도 불면 꼬질꼬질한 먼지가 날릴 것 같은 14년 전 발급받은 대학졸업증명서, 경력증명서, 업무 이메일 등을 찾아내서 보냈다. 원본은 면접 진행 시 가져가기로 하고.


.

.

.


그런데 면접에 오라고 할까? 설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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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번역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던 다른 회사에서 불합격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사실 합격 소식을 듣고 싶었던 곳이었다. 살면서 제법 많은 불합격 소식을 접해봤지만, 은근히 묵직하게 타격이 컸다.


아이 둘의 육아를 전담하면서 힘든 점은 내가 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회사 다니는 남편님도 힘들겠지만, 블랙홀로 쏙쏙 빠져 없어질지언정 월급이란 보상이 나오고, 몸담은 업계에서 경력도 꾸준히 쌓아가고 인정도 받고 있지 않는가. 반면 24시간 엄마의 삶은 그 누가 보상을 해주거나 그 경력을 인정해주진 않는다.


그래도 엄마라는 직업이 좋은 점은 누가 나에게 불합격을 줄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그런 나의 철옹성 같은 정신세계를 무너뜨린 갑작스러운 소식, 불합격. 나의 업무 능력을 테스트하고 '불합격'이라고 한다. 뭔가 묵직하게 움푹 파인 손상된 부분을 얼기설기 대충 막을 것이 아니라 찬찬히 살펴보고 제대로 봉합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어떻게? 과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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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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