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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Apr 02. 2018

적어도 오늘, 운동은 했습니다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다. 오늘도 운동을 가서 허벅지를 아작내고 왔기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한 지 3주. 아, 오늘은 피곤하니 가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아, 그래도 역시 가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 저녁이 되면 레깅스에 슬슬 다리를 밀어넣는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갔다가 백수 주제에 참 자율적인 사이클로 수업에 가고 있지만 요점은 주 4회 이상 출석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매일 시바시바 욕을 하면서도 왜 매일 운동을 가느냐 하면 운동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백수 생활을 시작한 기념으로 ‘그래, 이것도 안 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굳은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요가를 주 5회 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주부터 뭔가 슬 늘어지기 시작했다. 어제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어. 오늘은 쉬어야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늘어지게 잠을 잔 뒤 일어나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매일 아침 잠자리를 정돈한다는 건 그날의 첫 번째 과업을 달성했다는 뜻입니다. 작지만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을 해내야겠다는 용기로 발전합니다.’



잠자리 정리라. 당장 일어나 이불을 팡팡 펴고 정리해봤다. 음, 기분이 좋군.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청소를 했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비둘기 통신>을 업데이트했다. 음? 뭔가 더 하고 싶은데? 놀랍게도 책에 적힌 것처럼 그 기분이 온종일 지속됐다. 그래서 결국, 그날 저녁 운동을 갔다.



그때부터다. 아, 오늘은 너무 피곤하지 운동은 쉬어야겠다. 아침에 이렇게 생각하고 늘어지게 잠을 잤다가도 저녁쯤 ‘그래도 오늘 뭐 하나는 해야지’ 하는 생각에 슬슬 레깅스를 끌어올려 나갈 준비를 한다(사실 잠자리 정리는 나에겐 좀 약한 성취였다. 운동 정도의 익스트림함이 있어야...). ‘와, 이건 진짜 못하겠는데’ 싶은 뭔가를 연달아 빵빵 시키면 ‘아오오오’ 속으로 쌍욕을 내뱉으며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허리를 꼬았다 편다. 그렇게 불지옥 같은(핫요가라 실제로 불지옥 같다) 시간을 이겨내고 센터를 나서면 시바시바 드럽게 힘드네 중얼거리면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온다.



오늘도 그렇게 돌아왔다. 그리고 이 기분을 연장시키고 싶어 <비둘기 통신>을 쓴다(빨리 다른 걸 하고 싶어서 휘리릭 써봤다. 퀄리티는 좀 떨어지지만 더 만지고 싶지는 않다). 이걸 다 쓰면 뭘 할까. 뭔가 계속 하고 싶은 느낌이다. 짧은 성취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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