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카나레조, 자르디니
베니스에서의 하루는 도시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투어에 통째로 할애했다. 성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등 굵직한 장소를 거점으로 삼고 이동하는 길에는 재래시장 구경, 리알토 다리에서의 기념 촬영, 곤돌라 체험 등 볼거리, 할 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도시의 가장 깊은 구석까지 훑을 기세로 이끌려 다니며 가이드가 태어났다는 병원까지 지날 정도였다면 그날의 활동반경이 설명이 될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단연 성 마르코 광장이었다. 베니스 문화의 중심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성 마르코 광장 구경은 이 날의 피날레로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반나절을 부지런히도 걸어 다녔던 탓에 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딘가에 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투어는 끝을 보아야 한다. 투어 그룹을 쫄래쫄래 따라가니 역사 강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서두는 성 마르코가 베니스의 수호성인이 된 배경이었다. 이야기는 성인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건축했다는 대성당의 건축 양식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졌고, 내부로 이동해서는 벽과 천장을 장식한 모자이크의 배경이 된 성경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성당 옆에 위치한 두칼레 궁전으로 넘어가는 길,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도제를 중심으로 한 통치 체제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쯤에는 이미 다리도 머리도 파업을 선언하기 직전이었다. 한 눈을 팔고 싶을 때에는 광장에 숨어있는 사자를 하나씩 찾으며 성 마르코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궁전 안으로 자리를 옮긴 투어 그룹은 벽을 가득 채운 작품에 얽힌 장황한 이야기를 들었고, 계단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 카사노바가 건넜다는 탄식의 다리를 구경하는 것으로 이 날의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하루종일 열정을 다해 도시를 구경시켜 준 가이드분께 팁을 쥐어드리고서는 남자친구와 약속이라도 한 듯 힘껏 달려 궁전을 빠져나왔다. 분명히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겨웠는데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왔는지는 지금도 의아한 일이다. 가이드분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날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마지막에 달리기를 하던 순간이다.
광장을 구경하기에 앞서 이렇게 지쳐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도시를 통째로 돌아보는 김에 섬의 최북단까지 다녀오기로 결심한 우리는 투어 중반 점심시간으로 주어진 1시간 반 동안 왕복 3킬로의 거리의 식당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목적지로 정한 식당까지 가는 길에서 우리는 물밀듯 몰려오는 인파를 뚫었고, 노인 몇몇이 바깥 테이블에 앉아 소일거리를 하는 허름한 식당도 지났다가, 창문 바깥으로 빨래가 대롱대롱 걸려있는 주택가도 지났다. 발을 어깨너비의 1.5배만큼 간신히 벌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좁다는 골목을 지나기도 했다. 그렇게 베니스의 동서남북에 발도장을 찍는 데 성공한 우리는 시원하게 뚫린 바다를 바라보며 파스타를 먹고 디저트까지 챙겨 먹었고, 집합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뿌듯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랜드마크 구경에 에너지를 소진한 이튿날은 발길이 닿는 대로 여유 있게 베니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도랑을 옆에 둔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고, 수상버스에 올랐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걸었다. 어딜 가든 사람이 넘쳐났지만 계속 걷다 보니 나타난 인적 없는 곳에서는 드론도 날렸다. 저녁 무렵이 되어 수상버스를 타고 호텔에 돌아갈 때는 쓰레기 처리장을 보기도 했다. 그 뒤로는 대형 트럭이 지나가고 있는 도로도 보였다. 며칠 동안 잘 꾸며진 세상에 들어와 있다가 무대 뒤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벤델라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다시 베니스에 오는 것을 기약했지만 우리는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싶었다. 아마도 물에 잠기고 있다는 베니스가 지금의 모습을 잃기 전에. 하지만 그런 기약이라면 언제까지고 미뤄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성 마르코 광장을 거쳐 대운하 옆을 마지막으로 걸었다. 이미 몇 번을 오고 간 거리지만 여전히 동화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기차역으로 갈 때는 호텔에서 택시를 잡아준 덕에 첫날 같은 바가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모든게 완벽했던 마무리였다. 고마워. 인사를 하고 피렌체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도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