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이 합의하는 지중해풍 별장이 특별한 건축 양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는 지중해풍 별장은 그냥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집들이었다.
그래도 우리 눈에 집은 달라 보이는지 건축 양식도 다르고 구조도 전부 제각각이었다.
지중해의 여름은 저녁 9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우리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별장이 모여 있거나 빌라촌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길옆에 주차를 하고 건물을 탐색(?)했다. 직접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 담벼락에 까치발을 들어 정원 안을 들여다보고 밖에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올라가서 내려다 보고… 합법적인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건물을 분석해보았다.
며칠이 지나자 지중해풍 별장들의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집은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창과 열림 공간을 가능한 크게 한다.
집이 높지 않으며 직사각형과 아치 형태의 구조가 많다.
주자창은 지하이거나 집의 뒤쪽으로 공간을 따로 만들어 바다가 바라보이는 시선을 가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집들이 하얀색이다.
출처: https://www.cotedazurvillarentals.com/
부모님이 지중해풍 별장 탐방 목적으로 계획하신 9박 10일의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프랑스에 와서 새로 산 신발도 이미 많이 더러워졌다. 일정 막바지에 부모님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었는지 하루 정도 깐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셨다. 깐느 해안가에는 명품숍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것보다는 구시가지에 있는 상점에서 찜솥으로 쓰기 좋겠다며 큰 냄비 두어 개와 스테인리스 과일 바구니를 하나 사 오셨다.
깐느의 구시가지 , 출처: Pinterest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부모님은 사온 냄비들이 너무 커서 수화물 가방에 들어가지 않자 분홍색 보자기에 싸서 니스 공항에 들고 가셨다. 내 반찬을 가득담아 부모님 손에 달려온 분홍색 보자기는 냄비를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보자기를 가만히 응시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차 속에서 보자기 틈 사이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흘러 울렸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공항에서 발권을 하고 검색대를 지나가는데 금속탐지기에서 역시 예상대로 크게 “삐~”하고 소리가 났다. 외국어를 못하시는 부모님이 마구잡이로 보자기를 풀어서 큰 냄비를 보여주자 보안 직원이 재미있다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통과하란 손짓을 보냈다.
신발만 달라졌을 뿐 니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복장으로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부모님이 나지막이 던 시진 한마디가 맴돌았다.
“데이비드 베컴인가 먼가 하는 아무개의 별장이 하얗고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