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별 바보 안녕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묘약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엔 철없고 우스운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하지만 사랑을 할 때는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무지개를 뛰어넘고 풍선을 타고 구름 위를 날아다니며 만개한 꽃밭을 뒹굴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이별이라는 시한부를 통보받게 된다. 그리고 이별 후에서야 알게 되는 무지막지한 사랑 뒤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별한 사람에게 세상의 모든 술은 나를 위한 것이고 세상의 모든 밤은 영원히 밝지 않는 것이고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는 모두 나의 이야기들이다. 친구도 가족도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사람, 그렇다, 이별을 겪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지금 내 심정을 마치 끄집어내 본 듯이 속속들이 읊어주는 이별노래들이다.
사랑이라는 별을 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결국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한 수많은 실연인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이별노래의 걸작들을 모아보았다.
구창모 – 희나리 (1985)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80년대 국내가요의 작가주의적 작사성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채 마르지 않은 장작’이라는 순 우리말 제목을 가진 곡 ‘희나리’는 그룹 송골매의 보컬이었던 구창모가 1985년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크게 히트한 작품이다.
구창모 1집 [發] 앨범은 총 12곡의 수록곡에 송홍섭, 김기표 등 당대의 실력파 작곡가 8명이 참여할 만큼 심혈이 기울여진 음반이었다. 구창모는 앨범을 제작하기 직전에 성대에 난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송골매 활동 시절과는 다른 허스키 음색에 바이브레이션을 강조한 발성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희나리’와 ‘문을 열어’의 빅히트에 힘입어 [發]앨범은 발표 이후 3개월 만에 15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희나리의 중국어 번안곡인 ‘기허풍우(幾許風雨)’가 홍콩영화 ‘영웅본색1’에 삽입되어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1987)
150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문세의 3집 앨범이후, 2년이 지난 1987년 발매한 이문세 정규 4집은 285만 장이 판매되어 국내 대중가요 음반 최다 판매기록을 갱신한 작품이자, 198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이다.
앨범의 타이틀곡 ‘사랑이 지나가면’과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가요계의 전문가들에게 한국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김동석 오케스트라의 현악 연주로 구성된 ‘밤이 머무는 곳에’, 팝과 록의 접목으로 흥겨운 비트를 느낄 수 있는 ‘그대 나를 보면’, 경쾌한 포크 리듬의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슬픈 미소’, ‘굿바이’ 등 총 9곡의 수록곡은 모두 작곡가 이영훈의 가사와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은 이문세와 이영훈 콤비가 제작한 첫 음반이었다. 또한 김광석, 함춘호의 세션과 김명곤의 편곡 역시 앨범에 명반의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그대를 몰라요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의 고백은 정훈희, 최성수, 최유나, 박강수, 백미현, 이수영 등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당대의 가수들이 리메이크했으며, 2014년에는 인기가수 아이유가 앨범 [꽃갈피]에서 다분히 소녀다운 감성으로 리메이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조용필 –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990)
1990년 1월 조용필은 지구레코드와의 오랜 전속계약을 끝내고 현대음향으로 소속을 옮겨 첫 앨범을 발표했다. 이것은 조용필의 통산 12집이었지만, 앨범의 정식 명칭은 「90-Vol.1 Sailing Sound」이었다. 조용필은 현대음향에서 「90-Vol.1 Sailing Sound」앨범만 발표하고, 이후 서울음반과 계약하여 다시 13집과 14집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90-Vol.1 Sailing Sound」 앨범에 수록된 10곡 중 7곡을 조용필이 직접 작곡했으며, 최은정이 작사하고 조용필이 작곡한 ‘추억속의 재회’는 앨범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곡이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사가 박주연과 조용필의 첫 작품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마음 깊숙히 울려주는 가사와 리듬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담담하게 삶을 이야기해주는 마음 깊은 곳의 심연을 담은 듯한 철학적인 가사가 여운을 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김현식 – 내 사랑 내 곁에 (1991)
1990년의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아파트 단지를 올라가는 길은 눈이 쌓여 항상 미끄러웠고 차들은 헛바퀴를 돌리며 단단한 얼음덩이들과 십 여분씩 씨름을 했다. 차창을 열면 눈 앞에 하얀 레이스 커튼이 펼쳐진 것처럼 눈보라가 들이쳤다. 눈의 여왕의 선물처럼 온 세상에 펼쳐졌던 눈의 장막이 누그러질 때쯤 고(故) 김현식의 앨범이 나왔다.
1990년 11월 1일에 사망한 김현식은 죽음을 앞두고도 노래를 불렀고 1991년 2월 그의 6집 앨범 [추억만들기]가 발표되었다. 91년의 한국 사람들은 김현식의 노래에 취하고 그의 죽음에 취해서 술을 마셨다. 세상은 온통 ‘사랑 사랑 사랑’을 따라 불렀고 술에 취해 주저앉은 녀석들은 결국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며 울먹였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김현식은 1975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다운타운가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봄여름가을겨울’이 수록된 1집 앨범을 선보였지만 대중적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1984년 발표한 2집 앨범에서 ‘사랑했어요’라는 곡이 크게 히트하며 이름이 알려졌다. 1985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1986년 12월에 발표한 3집 앨범에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이 수록되어 있었다.
밴드 해체 후 슬럼프를 겪던 김현식은 1988년 9월 ‘언제나 그대 내 곁에’ 등이 실린 4집 앨범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1989년 권인하, 강인원과 영화앨범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녹음할 때부터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1990년 ‘넋두리’가 실린 자전적 앨범인 5집을 발표할 즈음에는 의사가 ‘술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죽는다’고 경고할 정도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결국 최악의 몸 상태에서 녹음하던 김현식은 6집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1990년 11월 서른셋의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발매된 유작 앨범 6집에 실린 명곡 ‘내 사랑 내 곁에’는 신촌블루스의 기타리스트 오태호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1991년 제6회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이승환 – 천일 동안 (1995)
‘그 천 일 동안 힘들었었나요 혹시 내가 당신을 아프게 했었나요. 용서해요 그랬다면 마지막일 거니까요 난 자유롭죠 그날 이후로. 다만 그냥 당신이 궁금할 뿐이죠 다음 세상에서라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마요’
이 보다 더 한 사랑의 고백이 있을 수 있으며, 이 보다 더한 원망의 비통함이 있을까. 이승환의 자전적 가사와 김동률의 애틋한 감성의 작곡이 어우러진 노래 ‘천일동안’의 애달픈 매력은 3년간의 치열했던 사랑의 기억을 단 30분 만에 노래로 만들어낸 이승환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가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95년 발표한 이승환의 4집 [Human]은 당시 유행하던 댄스음악의 강세 속에서 발라드 음악의 역풍을 가져온 대히트 작품이었다. 그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자면 이승환의 ‘천일동안’은 김수희의 ‘애모’에서 느낄 수 있는 뽕짝의 깊은 애환을 담고 있는 노래이며, 그 느낌의 깊이 때문에 10대에서 40대까지 폭넓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전작 ‘플란더스의 개’나 ‘덩크슛’과는 전혀 다른 애절함마저 느껴지는 이승환의 목소리와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폭발하는 후반부의 열정적인 고백을 더욱 마음 아프게 하는
‘천일동안’은 이별노래계의 불후의 명곡인 만큼 넬의 김종완과 옥주현, 박정현, 소찬휘, 김형중, 테이등 여러 실력파 가수들이 가요방송에서 리메이크했다.
브라운아이즈 – 벌써 일 년 (2001)
벌써 16년이 지났다. 처음 브라운아이즈를 만났을 때, 아니, 처음 ‘벌써 일 년’의 뮤직 비디오를 보았을 때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였던 김현주와 홍콩의 인기배우 장첸의 만남은 이미 노래를 버금가는 화음이었고 드라마였다.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 앞에 나타난 또 다른 남자, 순애보로 점철된 그의 손에 꼭 쥐어진 피 묻은 반지는 애절한 R & B 리듬의 섬세한 음률위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구어지는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브라운아이즈는 ‘벌써 일 년’ 뮤직 비디오의 대성공으로 단 한차례의 공연도 없이 70만장의 음반판매 기록을 달성했으며, 이후로 한국 가요계는 대작 뮤직비디오의 제작 붐이 일어났다. 철저하게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던 브라운아이즈는 2001년 갑 엔터테인트먼트의 윤건과 나얼이 결성하였다.
작곡과 작사, 프로듀스, 편곡까지 음악에 관한 대부분의 작업을 맡은 윤건은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했으며 1999년 힙합 그룹 TEAM의 일원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윤건은 FM 라디오 MBC FM4U에서 ‘꿈꾸는 라디오’를 진행했었고, 2011년에는 시트콤 ‘하이킥 -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음악교사 역할로 등장하는 등 연기자로도 활동했으며, 저서 ‘커피가 사랑에게 말했다’(2009), ‘카페 윤건’(2012)을 발표하는 등 현재도 꾸준히 연예와 예술계의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앨범 제작과 재킷 디자인, 의상 디자인 등의 컨셉트 작업을 맡았던 나얼(본명: 유나얼)은 계원조형예술대학 매체회화과와 단국대학교 서양화과을 거쳐 단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조형예술학을 전공한 미술학도이다. 1999년 앤썸 1집 [변심]으로 데뷔하였고 해체 후 브라운아이즈로 활동을 시작했다. 방송매체에 나서는 것을 대단히 꺼려하는 특징이 있어서 브라운아이즈 활동 때 단 한 번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브라운아이즈의 명앨범 [Brown Eyes]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98위에 선정되었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거리에서는 코트 깃을 세운 채 종종 걸음을 치는 사람들 사이로 슬픈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크게 한번 휘돌고 지나가는 나뭇가지 사이에는 지나간 추억의 빛바랜 기억이 걸려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대는 외롭다. 목구멍까지 넘쳐 올라 곧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며 그대는 홀로 고독하다.
뒹구는 낙엽이 떠나간 사랑을 떠올리게 할 때, 이미 늦어버렸다고 슬픈 바람소리를 남기고 사라질때, 바보처럼 울어버릴 너무도 쓸쓸한 그대에게 이 노래들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