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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Oct 06. 2018

커피예찬

미스터 선샤인, 차가운 당신 손에 심장처럼 뜨거운 가배 한잔을...


“예술의 목적은 자연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는 나폴레옹이 칼로써 이룩하지 못한 것을 나는 펜으로 이룩하겠다는 위대한 염원을 가지고 왕성한 집필활동을 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며, 평생 그가 마신 커피는 오만 잔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무려 18년의 구애 끝에 자신이 연모하던 백작부인과 결혼했지만, 지나친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결혼 5개월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커피는 수세기를 거쳐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영감의 힘이 되어주었고 수도사들에게는 기도와 묵상을 위한 약용으로 애용되어왔다. 독일계 유대인 역사학자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Heinrich Eduard Jacob)은 그의 저서 ‘커피의 역사(The Epic of a Commodity)’에서 이전 시대에는 극소수의 천재들에게나 가능했던 뛰어난 업적을 커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커피는 낭만과 신성이 춤추던 ‘와인의 시대’를 끝내고 합리와 과학의 근대를 이끌었다“고 묘사했다.

커피의 기원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인 ‘카파(Caffa)’로 ‘힘’을 뜻하며, 유럽에서는 처음에 ‘아라비아의 와인’이라고 부르다가 1650년 무렵부터 커피라고 불렀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한 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윌리엄 유커스(William Ukers)의 ‘커피의 모든 것(All About Coffee)’에 나오는 염소 이야기다.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인 칼디(Kaldi)는 어느 날 자신이 기르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고, 며칠간 유심히 염소들을 관찰한 소년은 염소들이 들판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고 나면 흥분을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열매의 맛과 성분이 궁금해진 칼디는 열매를 먹어보았고, 열매를 먹고 난 뒤 피로감이 사라지면서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황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장 인근의 이슬람 사원에 있는 사제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사제들에 의해 기도 중 졸음을 쫓아주는 약용으로 여러 사원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커피의 확산


커피가 이슬람에서 아랍으로 들어오게 된 시초는 6세기경 아비시니아(Abyssinia, 지금의 에티오피아)가 아라비아의 남부 지방(지금의 예멘) 지역을 공격하면서 커피도 옮겨가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커피는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인해 터키의 이슬람 수도승들이 즐기는 음료로 활용되었다.


십자군 원정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커피는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이교도의 음료라는 이유로 가톨릭 종교 교리에 따라 억압되었던 커피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예술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사랑받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결정적으로 16세기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의 맛에 반하여 축복의 세례를 내림으로써 커피는 유럽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기호품이 되었다.

인스턴트 커피의 탄생


1920년대 말 브라질의 커피값 폭락사태로 브라질 정부는 식품회사인 네슬레에 협조를 요청했다. 네슬레는 1938년 네스카페(Nescafe)라는 상품명으로 분말커피를 시판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인스턴트커피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인들의 각성과 사기진작용으로 지급된 인스턴트커피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조선제국의 커피
 
한국의 커피 전래 시기는 19세기 후반, 임오군란 이후 미국, 영국 등 서양의 외교사절이 들어오면서 커피의 음다풍속(飮茶風俗)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커피는 한자로 음역되어 ‘가배다’ 혹은 ‘가비다’라고 불렸다. 최초의 한국인 커피 애호가는 고종(高宗) 황제였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피신해 있던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마셨다고 알려진 고종은 궁중의 다례의식에까지 사용하도록 했을 만큼 커피를 좋아했다. 또한 덕수궁에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서양식 정자(亭子)를 짓고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다.
정관헌
1919년 이후부터는 명동과 충무로, 종로 등지에도 일본인이 주인인 커피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커피가 한국인들에게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45년 이후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값싼 인스턴트커피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부터였다.

1976년 동서식품은 커피와 크림, 설탕을 표준화한 비율로 섞어 낱개 포장하여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했다. 커피 한 스푼에 설탕 3스푼, 크림 2스푼의 황금배합인 다방커피의 비율을 간편하게 봉지에 담아 타먹을 수 있게 만든 커피믹스는 이후로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용차가 되었고, 현재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는 효자상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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