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요나 권장 영화 장수상회
박근형, 윤여정, 조진웅 주연. 강제규 감독.
내가 늙어가는구나, 하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찬바람에 팔 다리가 쑤실 때, 드문드문 하던 흰 머리가 유난히 눈에 뜨일 때,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영화와 노래에 얽힌 사연을 젊은 사람들은 모를 때 문득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낀다.
강제규 감독은 1990년 초반부터 하이틴 영화 흥행작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안성기 주연의 정치 스릴러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한국형 느와르를 탄생시킨 ‘게임의 법칙’의 각본을 쓴 충무로의 기대주였다. 그가 최초로 감독한 ‘은행나무침대(1996)’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인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을 주연으로,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섰던 컴퓨터 그래픽을 선보이며 신비로운 은행나무에 얽힌 천년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역사대서사극이었다.
‘은행나무침대’는 서울에서만 약 68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1996년 한국영화 흥행순위 2위를 차지했고, 제1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촬영상, 음악상과 제32회 백상예술대상 기술상, 제34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심혜진)과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90년도 이전까지 서구 문화에 잠식된 한국 지식층(을 표방하는 무리)들은 한국영화를 방화(邦畫)라고 스스로 낮추어 부르면서 한국영화와 가요를 듣는 사람들은 ‘엽전’이라고 무시를 해왔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의 헐리웃을 비롯한 서구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극도로 높아지자,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제도에 정해져 있는 날짜를 채우기 위해 억지 상영하는 춘향이처럼 눈칫밥 먹는 존재가 되어갔다.
‘‘스크린쿼터제도’란 국산영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영을 의무화하는 제도로, 우리나라는 1967년 1월 1일부터 스크린쿼터제를 실시하여 1985년 이후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는 연간 146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영화 ‘쉬리’ 이후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국내영화관객들의 한국영화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제규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쉬리(1998)’는 그동안 한국영화에 쏟아졌던 무관심과 무시를 일순간에 불식시키는 대작이자 한국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다. ‘쉬리’ 이후로 국내외의 한국영화에 대한 선호와 대우는 확연히 달라졌으며, 한국에서도 영화산업이 곧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낳게 했다. 그러자 곧 스크린쿼터제도의 존폐여부가 불거졌다.
1998년 미국영화협회 회장 잭 발렌티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공식 요청하자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김지미·임권택·이태원)’를 발족하고 ‘스크린쿼터 축소 음모 저지를 위한 투쟁’을 선포하며 삭발을 감행하는 대투쟁을 시작했다.
당대 한국 영화의 원톱이었던 한석규와 잊혀졌던 꾸숑 최민식을 주인공으로 애절한 주제가 ‘When I Dream’을 유행시키며,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송강호가 유일하게 실패한 영화로 기억 되는 ‘쉬리’는 이처럼 굴곡 많은 영화인들의 한을 안고 있는 영화였다.
이후로도 ‘태극기 휘날리며(원빈, 장동건 주연. 2004)’, ‘마이웨이(장동건, 오다기리 죠 주연. 2011)’ 등의 굵직한 전쟁영화들을 연출했던 강제규 감독이 내놓은 2014년 작품 ‘장수상회’는 거친 전쟁터에서 이제 막 돌아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우는 거친 사내의 들썩이는 어깨를 보는 듯이 감회가 어리는 작품이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순수한 연애이야기. 그리고 그 남자와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랑이란, 우렁각시처럼 뒤에 숨어서 가만히 나를 지켜주는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감독 강제규의 필모그래피를 읽어 보노라면, 그의 삶의 여운이 느껴진다. 현란한 판타지에서 장대한 역사극에서 전쟁터에서 그리고 이제 그가 찾은 곳은 가족, 내 집. 그래서 가슴이 더 뭉클해지는 영화, ‘장수상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