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한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2명 중 1명이 휴일에 카카오톡을 받아보았다고 한다.
나도 물론 그 2명 중 1명이다. 오죽하면 카톡감옥(카카오톡 감옥)이라는 용어가 있겠는가.
문제는 감옥에는 죄지은 사람이 가지만, 카톡 감옥에 갇힌 이들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카카오톡은 편리한 물건이다.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데에는 과거 유선전화 시대의 부모님 세대 직장에 비하면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뤄냈다고 보아도 좋다.
그렇지만 업무시간이 아닌 시간대는 물론, (여기까지는 사실 이해해줄 수 있다)
휴일이나 휴가 중에까지 카카오톡을 보내는 것은 '선 넘는다'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영국으로 긴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 분명히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까지 올린 전무님께서 전화와 카톡을 며칠 연속으로 보낸 적이 있다.
분명히 첫 전화를 받아서 "어디냐"는 질문에 "런던입니다"라고 대답까지 하였고, 휴가 중에 미안하다는 사과까지 받았지만, 그 뒤로 이틀 동안은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인간은 남의 일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억력을 할애하는 데에도 후순위일 수밖에 없다.
수십 명의 직원을 거느린 전무님께서 내가 한 번 말했다고 해서 기억해주시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찾아주시니 얼마나 고마운가. 하루라도 더 보고 싶으셨나 보다.
여기서 문제는, 메신저나 회사 전화가 아니라 개인적인 카톡이나 전화를 업무 시간 외에 서슴없이 해도 아무런 마음의 거리낌이 없는 기업문화에 있다.
업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장비와 기술력이,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고문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지체/문화지체라는 단어를 중학교 사회 시간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생각보다 살면서 많이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문화지체이다. 언제 어디서나 서로 대화할 기술력은 진보하였으나, 그 안에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게 해주는 문화는 현저히 지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톡 감옥의 콘셉트는 너무나 잔혹하다. 꼰대니 뭐니를 논하기에 앞서서, 그 구조가 잔혹하다.
보통 카톡 감옥에 가두는 사람은 상사고 갇히는 사람은 부하직원이다.
(반대가 있을 수가 있나? 상사를 카톡 감옥에 가두는 부하직원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것이 휴일이든, 휴가든, 퇴근 후든, 새벽이든, 메시지를 보내고 업무지시나 자료를 보내는 사람의 생각에는 무의식 중이든 의식 중이든 "넌 씹지 못해"라는 저의가 깔려있을 것이다.
권력이 달리 있는가? 나의 의지로 타인의 의지를 컨트롤할 수 있는 만큼 '권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감옥에는 죄지은 사람이 가지만, 카톡 감옥에는 죄 없는 사람이 간다.
(계급 낮은 것이 죄라면, 죄다)
86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보안상의 이유로 금지했던 PC카톡을 한 때 허용한 적이 있었다.
2016년에서 2017년까지 길지 않은 기간이었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무척 기뻐하였으나, 돌이켜보면 사실상 그 때야 말로 카톡 감옥의 전성기였다.
감옥에서의 탈출 방법은 따로 없다.
"죄송하지만, 휴가 중인데 연락하지 말아 주십시오"
"실례지만, 일요일이신데 달력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저어, 이미 퇴근해서 그런데 내일마저 말씀하시지요"
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나도 없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인 탈옥, 그러니까 퇴사로 나는 향하게 되었다.
종박의 퇴사까지 앞으로
D-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