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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보 Jan 03. 2018

커리, 커피, 변증법과 친박연대

어렸을 적부터 카레를 많이 먹었다. 그때 먹은 카레는 일본에서 개량한 동양식 카레였다. 나는 그런 카레를 먹어서 카레란 응당 카레 가루에 밀가루를 볶아낸 루와 섞어 걸쭉하게 만든 소스에 적절히 썰어놓은 고기나 감자, 당근, 양파 등을 섞어 끓여낸 후 밥 위에 얹어 먹는 것이라고 알았다. 

그러다가 2000년도에 처음으로 정통 인도식 카레(커리)를 맛보게 되었다. 그 맛은 기존에 내가 알아왔던 커리가 아니었다. 여태껏 먹어본 것과 맛이 아주 다르며 어떤 것은 노란색도 아니고 엄청 걸쭉한 데다 밥도 아닌 빵에다 찍어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커리라는 것이다. 인지적 부조화가 찾아왔다. 이것을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나는 이 인지적 부조화 문제를 여태껏 먹어왔던 것은 카레이고 이 정통 인도 카레는 커리라고 구분 지어 명명하는 것으로 일단은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지금은 커리란,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카레(커리)”라는 의미는 어느 특정한 소스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며, 각종 재료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추가한 국물 또는 소스 요리를 통칭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경험들을 떠올리면 많이 생각난다. 그중 하나로 커피를 들 수 있다. 스무 살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커피란 커피가루(로부스타)와 프리마, 설탕이 들어간 다방식 커피만 경험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커피라는 개념을 달달하면서도 씁쓸하고 부드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원두커피를 접하고 그간 마셨던 커피는 가짜 커피, 믹스커피, 이른바 다방커피로 격하시키고 원두커피가 진짜 커피로 여기고 커피란 씁쓸한 탄 맛이 깃들어 있으며 이 원두커피만이 진짜 커피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원두커피는 다양한 맛, 이를테면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등이 있으며 커피를 끓이는 온도, 커피를 내리는 방식-핸드드립이냐, 에스프레소냐, 사이폰이냐-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커피들을 마시면서 지금은 다방 커피나 에스프레소 커피, 드립 커피 모두 커피나무의 씨(커피콩)를 볶아 가루로 낸 것을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 또는 증기로 우려내어 마시는 쓴맛이 나는 음료로 이해하고 일반화해서 생각하고 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카레나 커리나, 다방 커피나 원두커피나 일반화하면 모두 커리나 커피인 것이다. 다만 그 이전 경험에 비추어 일반화했던 그 속성들이 기존의 것과 다른 속성을 가진 것을 만나는 경험이었다. 이처럼 경험에서 얻었던 내 안의 일반화되고 명명된 지식이 다른 속성을 가진 것을 만났을 때 우리는 다른 것으로 명명하거나 좀 더 일반화된 하나의 속성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동화와 조절). 


이것을 변증법에 대입하여 생각하여 볼 수도 있다. 변증법은 일반적으로 정-반-합으로 모든 것은 변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위키피디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변증법 (辯證法, dialectics, 그리스어: διαλεκτική)이란 이성적 토론을 통하여 진리를 세울 주제에 관하여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말한다. 모순을 통해 진리를 찾는 철학 방법이다. 변증의 방식은 정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하여 이들 간에 모순되는 주장의 합명제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논법이다. 동일률을 근본 원리로 하는 형식논리에 대하여, 대립 또는 모순을 근본 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논법이다. 

이것을 커리에 대입하면 정명제-내가 아는 일본식 카레, 버몬트 카레, 오뚜기 카레가 커리다. 강황이 들어가 있으며 약간 묽으면서 밥에 얹어먹는 것이다. 반명제-인도 커리가 진짜 커리다. 왜냐하면 커리는 인도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이 커리가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커리이고 세계적으로 커리는 인도 커리가 ‘진짜’커리라고 인식되어 있다. 합명제-오뚜기 카레나 인도 커리나 모두 같은 커리이다. 커리는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카레(커리)”라는 의미는 어느 특정한 소스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며, 각종 재료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추가한 국물 또는 소스 요리를 통칭하는 것이며, 단지 오뚜기 카레와 같은 일본식 카레는 동양의 입맛에 맞게 변용한 커리의 한 종류이다. 나는 이렇게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일반화된 ‘커리’에 대한 생각을 나의 도식schema으로 형성하였다. 살아가면서 이 ‘커리’에 대한 상식도 변할 수 있겠다. 다른 퓨전 음식을 ‘커리’라고 명명한 음식을 경험하게 된다면 말이다. 


학습은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끊임없이 변증법적으로 형성되어가는becoming 과정이지만 이런 지식이 내 안에 존재하며 지식이 바뀌고 확장되고 일반화되어간다.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카레를 커리로, 다방 커피를 커피로 일반화하여 명명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도 이렇게 일반화하여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한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옛날 어느 시골에서 모여 놀다가 서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이야기를 하며 “서울 남대문 현판의 남녘 남짜 획이 날아갈 듯하더라”하였다. 서울에 가 본 이 중 하나가 이 말을 듣다가 참지 못하고, “예끼 남녘 남짜라니.. 숭례문이라고 쓰여 있는 데…” 하여 싸움이 났다. 남대문을 여러 사람이 남대문이라고 해서 서울에 가서 남대문을 찾았지만 실제로 남대문에 가서 본 사람이 남대문은 남대문이 아니라 ‘흥인대문’이라고 적혀있더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무시당했다.

나는 사실을 보고 경험하여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람들은 어긋난 사실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해보았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신은 답을 알고 있다. 직접 데리고 가서 보여주거나 사진을 보여주거나 직접 남대문을 본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럼 그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 말해온 것을 지키기 위해 그 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런 사실을 제시하는 이가 잘못되었다거나 증거가 조작되었다거나 그 증거를 보거나 검증하지 않거나 자신의 기존 지식을 강화시켜주는 다른 의견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로 나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친박연대가 벌이고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반론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을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 계몽주의자의 입장에서 ‘측은하게’ 바라볼 것인가, ‘모두가 옳다. 단지 다른 시각이 존재할 뿐.’이라며 ‘존중’할 것인가. 이미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고민이자,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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