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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y 10. 2021

멸치볶음 판 돈을 우습게 본 죄.

마흔일곱이 되고 나니 몸의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찍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습니다. 흰머리 늘어나서 염색을 두 달마다 한 번씩 해야 하는 건 괜찮은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벌써 이 나이에 근력 떨어지고 근육의 손실이 느껴졌어요.

특히 엉덩이 근육 , 고관절을 연결해주는 부위와 어깨가 라운드 숄더로 굽은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그동안은 오십견 재활을 해야 해서 (누가 읽으면  나이가 60, 환갑 넘은  알겠습니다) 헬스클럽도 요가센터도 방문을  수가 없었어요.


한번 시도를 해봤는데 팔이 안 올라가니 어떤 동작도 따라 할 수가 없고 오히려 선생님의 주의를 끄는 불량학생이 되니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더군요. 하는 수 있나요? 혼자 재활하느라 집으로 선생님이 방문하는 홈핏 서비스를 넉 달 정도 받고 나니 이제는 센터를 방문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고민을 오래 하다가 개인 pt를 받아보기로 큰 맘을 먹어봤습니다. 재활치료야 어쩔 수 없이 비싸도 받아야 했지만 헬스센터에서는 이 나이 되도록 옆에서 선생님이 붙어 다니며 밀착수비로 운동코치를 해주는 걸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우선 비용이 제일 큰 부담이었죠. 1회에 7만 원부터 시작하는 pt비용은 저에게 너무 큰 부담이었어요. 저를 위해 쓰는 돈을 계산할 때는 단위가 항상 멸치볶음 한팩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 돈을 벌려면 멸치를 몇 팩을 볶아야 하는 거야 싶어서 pt, 20회 비용인 140만 원은 저에게 어마어마한 돈이었던 거죠.


제가 판매하는 멸치 한팩의 가격은 2만 원입니다. 한팩에 들어가는 멸치의 그람수는 재어보질 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재보니 260g 정도 되네요. 멸치 내장과 머리를 제외한 순수한 멸치의 몸통만을 잰 무게입니다. 한팩을 고추장 소스를 묻혀내어 볶음을 만들려면 저의 어깨가 몇 번은 빠지는 거 같은 힘듦을 겪어줘야 됩니다.

우선, 멸치를 다듬어주는데 시간이 한팩 기준으로 1시간 반 정도 소요가 됩니다. 생김은 시원시원하게 거침없이 대~~ 충 일할 거같이 생겼는데 제가 의외로 엄청 음식엔 까탈을 부립니다.


누가 같이 다듬어주는 꼴도 못 봅니다. 오로지 세정제로 세척한 내 손으로만 줄곧 해놔야 직성이 풀립니다. 멸치의 굵은 가시도 용납을 못합니다. 멸치 똥을 제거하면서  멸치를 반으로 갈랐을 때 굵은 뼈가 있으면 그것도 발라냅니다.

멸치 머리는 따로 떼서 모아놨다가 마른 팬에 덖어서 국물 내는데 씁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진 멸치 몸뚱이가 한팩이 준비가 되었다고 이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응달에서 좀 말려서 비린내를 날려줍니다. 그리고 마른 팬에서 조심스럽게 15분 정도를 덖어주면 마른 멸치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고 고소해집니다.


여기에 바로 고추장 듬뿍 떠서 이거 저거 마구 집어넣고 아무렇게나 휘저으면 정말 곤란합니다. 마른 멸치는 걷어내고 궁중팬을 닦아준 다음에 고추장 소스를 만들어줍니다. 들기름과 맛간장과 물엿과 미림을 적당히 섞어서 보글보글 잔 거품이 일어나면 그때에 덖어둔 마른 멸치를 휘릭 넣어서 재빨리 소스를 묻혀준 다음에 통깨를 뿌려 마무리를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냉장고에서 한 달이 지나도 멸치가 비려지거나 눅눅해지지가 않습니다. 10년 전에 멸치 한팩에 2만 원이라고 하면 비웃는 지인이 더 많았습니다. 분수를 모르고 까분다는 느낌으로 비아냥을 했던 교회 집사님의 훈수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가격을 절대로 받아야겠더라고요. 대한민국 어디를 뒤져도 내가 만드는 멸치볶음이 1등이라는 생각을 놓아본 적이 없는 자부심 뿜 뿜의 반찬입니다.


그런 멸치 한팩을 만들어 팔아서 140만 원을 만들려면 70팩을 판매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어깨가 빠지게 내장을 발라내야 할 멸치 박스가 30 상자가 넘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번에 한 결정은 제 몸을 위해 건강을 위해 꼭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용감한 결심을 한 장수처럼 동네 새로 생긴 헬스 짐으로 지난 금요일에 방문을 했었습니다. 오십견이 있었지만 재활이 다 되어 완치가 됨을 코치님 눈앞에서 보여드리고 완치는 되었으나 운동함에 있어서 주의를 좀 주실 것과 제 몸의 취약함과 늘어난 갱년기의 몸무게에 대한 감량 목표를 야무지게 알려드리고 왔습니다.


부가세 10프로를 따로 받으면서 헬스 2개월 회원권을 감경해준다는 조삼모사식의 너그러운 척은 뭐 그럭저럭 애교로 봐줄만했습니다. 아유~~ 감사하다면서 앞으로 두 달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리고 오후 1시부터 운동이 가능하니 담당 선생님의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하고 집으로 올라왔었습니다.

어찌나 뿌듯한지, 계약만 했는데도 벌써 몸이 건강해진 거 같고 맘에 활기가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그 돈을 벌려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할 건지는 생각이 안 나고 내 몸에 투자할 기회를 만든 것에 대해 혼자 감격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헬스 짐에서 선생님이 연락을 주시지 않는 겁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헬스센터가 그리 번잡하지 않았는데 바쁘신가 싶었지만 일요일까지 기다려봤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자 더 이상은 기다리기가 힘이 들더라고요. 내일부터 당장 시작인데 시간표는 어찌 되는지 운동 계획은 어떤지를 개인 담당 선생님과 확인을 해봐야겠어서 헬스 짐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센터 담당자가 지점장과 통화 후에 저에게 해준 말이 저를 슬슬 달구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삼류 양아치 같은 느적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합디다.


“아, 저~~ 기, 지점장님이 오늘 내로 전화하신다고 하시네요~”


오늘 내로면 언제인지를 묻는 제 질문에도 역시나 똑같은 대답을 앵무새처럼 말하고는 전화를 끊더라고요. 순간 느낌이 싸하더군요. 저에게 불성실의 냄새가 확 끼쳐왔습니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헬스센터 회원 모집을 하느라 여기저기 전단지가 붙어도 휴지로 버려지는 코로나 시대에 그냥 헬스를 이용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고가의 pt를 받겠다는 회원에게 3일이 지나도록 전화를 안 하는 헬스센터에 열이 나기 시작한 거죠.


집에서 7분 거리라서 바로 남편과 같이 가봤습니다. 그리곤 즉시 환불을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야 점장이란 사람이 전화를 해서는 이러는 겁니다.


“아~~ 고객님, 1시부터 운동이 가능하시다고요? 내일 몇 시가 괜찮으세요?”


아마도 휴일이라 어디 놀러라도 갔는지 목소리가 한껏 들떴는데 귀찮은 아줌마의 클레임이야 식은 죽 먹기지 하며 여자 친구 앞에서 으스대기라도 하는 양 목소리가 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르더군요.


저한테는 아주 사나운 모습이 숨겨져 있는데 그 모습이 탈출할 때는 제 귀한 돈이 갈취당할 위기에 처할 때입니다. 눈매가 무섭게 변하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졌습니다.


“당장 취소해주세요. 3일이나 방치해두곤 이제 와서 무슨 소린지 듣기도 싫습니다. 위약금 어쩌고 저쩌고 하면 바로 경찰 불러서 해결합니다!”


속으론 그랬습니다.


‘이 녀석들아, 아니 젊은 녀석들이 요즘 한 푼이 아쉬운 이 코로나 불경기에 너네들은 140만 원이 우습더냐? 이 아줌마는 그걸 벌려면 멸치를 몇 박스를 까야하는지 아는 거야? 헐! 돈 버는 게 우습냐!!! 옛끼 이놈들!!! ‘


물론 이 속마음은 절대 한마디도 입으로 내뱉지 않고 점정님이 오셔야 환불이 가능하다는 카운터 양아치에게 강력한 레어저 눈빛을 쏘아대며 밤이 새도록 기다릴 테니 점장 보고 당장 와서 해결하라고 의자에 철퍼덕 앉아서 좀 시위를 해야 했습니다.

환불해주는 과정도 참 양아치스럽더군요.


그런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내 귀한 돈을 지켜야겠다는 맹렬한 의지가 더 불타올랐습니다. 세상에서 젤로 싫어하는 인간 군상이 돈 만원 귀한 줄을 모르고 남의돈 함부로 갈취하려고 하는 인간들입니다.


좀 있으니 점장이 저를 구슬려도 안될듯하니 취소를 해주라 했나 봅니다. 자기는 취소 환불을 못한다 하더니 만 점장 전화받고서야 카드 취소를 진행해주더군요.

사기꾼에게서 내 돈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가 불타올라서 머리 뚜껑이 날아갈뻔했습니다.


남편이 옆에서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면서 머리를 꾹 눌러주며 말을 건넵니다.


“아이고, 우리 정은이 돈을 함부로 봤다간 큰일 나는데... 머리 뚜껑 안 날아가게 내가 눌러줄게. 하하하”


귀한 돈, 140만 원을 지켜내서 어찌나 다행이던지 가슴이 쓸어졌습니다. 그런 불성실한 업체에서 두 달 동안 pt를 얼마나 성의껏 잘해주겠나(?) 싶으니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력 좀 늘리려다가 짜증만 늘어난 일요일 저녁에 돈을 지켜낸 뿌듯함과 안도감으로 남편에게 보쌈 외식을 배가 볼록하게 시켜줬습니다. 운동 대신 살코기 먹고 살집만 더 늘렸던 저녁이었지만 멸치 70팩을 만들어야 벌 수 있는 제 귀한 돈을 지켜내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 녀석들아!! 돈 그렇게 쉽게 벌려고 그러는 거 아냐!!! 알겠냐!! 세상 사는걸 그리 허투루 능청능청 양아치 같이 살면 못써!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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