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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2. 2023

여행을 시작하는 세 남자의 방식

같은 DNA를 가졌지만

삼부자가 찾은 중도의 길


미스터 사이공과 자손들의 출국날 아침이 밝았다. 우여곡절 끝에 노년, 중년, 유년의 세 남자가 출국을 한다. 비행기가 뜨기 얼마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가에서부터 삼대는 성향이 다르다. 


72세 아버지는 FM 그 자체다. 최소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4시간이면 더 좋다. 그 이유는 항공권에 '최소 3시간 전'에 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40세 아들은 여행 좀 다녀봤다고 효율을 따진다.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늦으면 늦는 대로 빨리 발권해 줄 것이고, 우리를 놓고 비행기가 뜨진 않을 것이다. 8세 아들은 할아버지 쪽에 가깝다. 좀 늦는 것 같으면 아빠를 보채며 3분에 한 번씩 묻는다.


"아빠, 지금은 몇 분 남았어요?"


아들에게 출발 시간에 대한 권한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아직은 아빠가 가자는 시간에 따라나서는 게 1학년이다. 몇 년 후에는 좀 더 서두르네 마네로 아들과 티격태격 할지 모르곘다.


초장부터 공항 도착 시간을 가지고 싸울 수는 없다. 여행을 잘하려면 좌파도 우파도 안 된다. 중도를 지켜야 한다. 2시간과 3시간의 정확히 중간, 이륙 2시간 반 전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2시간은 너무 급진적이다.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3시간은 너무 긴장감이 없다. 세 남자가 면세점 구경할 것도 아닌데 오래 앉아 기다리면 힘만 빠질 수 있다. 중도가 평화로운 나라를 만든다. 평화로운 여행을 만드는 것도 중도의 길이다.


우리 비행기는 베트남의 저가항공사인 Vietjet 항공의 오전 11시 40분 비행기였다. 호치민행 비행기는 밤비행기가 많다. 주말과 하루 정도의 빠듯한 휴가로 다녀오는 직장인들을 위해서다. 비행기에서 하룻밤 숙박을 하는 것은 체력이 무기인 젊은이들의 특권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지공 노인이라면서도 마음만은 젊은이다. 밤 비행기도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싫었다. 지난번 싱가포르 가족 여행에서 밤 비행기를 탔는데, 자정이 넘어 싱가포르 출국 심사대에서 잠든 아들을 깨우느라 모든 진을 다 뺐었다. 무조건 동공을 봐야 한다는 강경파 출국심사원 덕분에 기절한 듯 자는 아이의 눈을 벌리고, 뺨을 때리길 10분.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어린이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웬만해선 낮 비행기를 타야한다.

일어나 얘들아. 동공을 봐야 한대.



수하물 4.5kg의 기적


카운터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풀었다. 저가 항공사는 수하물 기준이 매우 빡빡하다. 기내 수하물만 7kg 가능하고, 위탁 수하물은 따로 구입을 해야 한다. 우리 원정대는 3인이지만 한 사람분의 20kg 위탁 수하물만 구입했다. 그리고 수속대에서 짐의 무게는 기적적이었다.


캐리어 1개 12kg

백팩 1개 4.5kg


아버지는 2kg짜리 백팩에 2.5kg어치의 가벼운 옷 두세 개와 샌들 하나, 호치민 가이드북, 베트남어 회화집 하나를 담아왔다. 동네 마실을 나가도 이 짐보다는 무거울 것이다. 부족한 옷은 가서 빨아 입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속 마음이 보였다. 백팩이 7kg이 넘어가면 안 그래도 위아래로 챙기느라 정신없을 아들이 힘들 테니, 규정보다 압도적으로 가볍게 해오고 싶었던 마음을. 그게 우리 아버지다.


나와 아들의 짐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캐리어를 가져갈 필요도 없었다. 모든 짐이 12kg면 충분했다. 이럴 거면 위탁 수하물 구매를 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삼부자는 유전자가 비슷하다. 우리 셋은 모두 짐이 필요 없는 남자들이다. 세 남자에겐 미니멀리스트의 피가 얼마 정도 흐르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잘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는 더운 남쪽나라 여행을 위해서 오랜만에 19,000원짜리 반바지 하나를 샀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러 나갈 때에도 감히 반바지 입고 나가긴 쑥스러운 아버지기에 입을 반바지가 없던 까닭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미니멀리스트 호소인쯤 된다. 나는 반바지가 무려 세 개나 있어서 살 필요가 없었다. 몇 년 만에 오래 걸어도 튼튼한 샌들을 하나 샀을 뿐. 아들은 이런 할아버지, 아버지의 후예이므로 미니멀리스트 상비군 정도는 될 거다. 선천적 유전자든 후천적 교육이든 그쪽으로 자랄 운명이다. 삼부자가 공유하는 DNA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삼부자 원정대


수속을 마치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 한식이었다. 베트남까지 가서 한식을 사 먹을 계획은 없었다. 어르신 모시고 가는 여행엔 한식당이 꼭 필요하다지만, 세 남자는 나이만 다르지 모두 청년이다. 베트남까지는 5시간 15분이 걸리고 점심시간도 끼어 있지만 저가 항공사는 밥을 주지 않는다. 기내식을 구매해 먹느니 마지막 한식을 즐기기로 했다. 어린이는 대한민국 남자 1타 메뉴 돈가스를 골랐다. 어른들은 속이 편한 비빔밥을 골랐다. 엄마, 여보라 불리는 여자들에게 세 남자 걱정 말라고 보낼 사진을 찍고 나니 출국장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세 남자는 출국 수속장 앞에 섰다. 우리 중엔 패스트트랙 대상자가 둘이나 있었다. 만 70세 이상의 고령자 한 명, 만 7세 미만의 유소아 한 명. 


긴 줄을 옆에 두고 우대 출구로 가는 것이 민망했던 아버지가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며 나에게 재삼 확인을 했다. 내가 아는 아버지라면 혹시 우리가 줄 서있는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나도 재삼 교통약자 기준을 확인시켜 드리는 수밖에.


인천공항 교통약자 출국 우대 제도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중



그렇다. 우리 일행은 고령자와 유소아, 그러니까 객관적 기준에서의 교통약자가 과반수인 팀이었다. 옆 사람들의 표정도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애 엄마는 어디 있지?', '흰머리 할아버지가 애 한 명 손 붙잡고 다니네?', '저 조합은 뭐지?', '세 남자가 어디까지 가는 걸까?' 따위의 눈빛이 읽혔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같은 DNA로 무장했다. 함께라면 두려울 것 없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면 아직도 손에 땀이 난다. 난기류를 만날 때면 남몰래 심호흡을 한다. 아들은 아빠를 닮은 건지 비행기가 흔들리면 아빠 어깨에 기대 손을 꼭 잡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기댔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타고 있다는 부담감에 산소마스크 쓰는 법을 더 꼼꼼히 들었다. 베트남까지는 5시간 15분. 난기류 때는 비슷한 모습으로, 평온할 때는 각자의 방법대로 보내다 보니 어느덧 남중국해를 지나 메콩 삼각주의 구불구불한 강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삼부자는 사이공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행기 밖으로 보이는 메콩 삼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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