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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1. 2023

3. 아빠, 나도 갈래요. 베트남.

1학년 아들 베트남 원정대에 합류하다.

육아휴직은 가족형 팀플레이


이렇게 급하게 여행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유아휴직 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1학년, 다섯 살 두 아들의 아빠이자 대한민국 사회가 장려해 마지않는 '아빠 육아휴직자'다. 회사의 첫 번째 남성 육아휴직 개척자이기도 하다.

아빠 육아휴직자의 일상

아내는 첫째를 낳고 잘 다니던 광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남에게 인정받고 스스로도 즐거워하던 일이었다. 아내는 막 태어난 아들을 처음 안을 때의 생경한 느낌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고 했다. 갓난 아이가 엄마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알리는 없었다. 그저 울고 웃으며 엄마와 눈을 마주칠 뿐이었다. 일을 사랑했던 아내는 일을 멈췄다. 


아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랑이 커갈 때쯤, 아내의 마음에 결핍 속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 보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의 소식은 아내의 내면을 세차게 뒤흔들었다. 아내는 창업을 하고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만들었다. 국악, 클래식, 밴드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인생을 조금 더 산 언니, 오빠 같은 연주자들을 섭외했다. 청소년들에게 들려줄 가치가 있는 메시지라면 음악과 대화에 녹여 공연으로 만들었다. 학교로 찾아가고, 공연장으로 불러 모았다.


아장아장 걷는 큰 아들을 데리고 공연에 갔고, 뱃속의 둘째 아들은 태교를 라이브 음악으로 했다. 가끔 연차를 내고 공연 보조를 하러 따라갔을 때 아내는 기뻐 보였다. 아들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일이 곧 성실한 육아였다. 꿈꾼 적 없었던 아내의 창업은 꽤나 고달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우리 가족에게 주었다.

둘째 아들의 태교 음악으로 쓰인 아내가 만든 공연


코로나는 아내의 커리어의 방향을 급선회시켰다. 3년간 쉴 새 없이 열리던 공연은 '0'이 되었다. 수업조차 온라인으로 하는 마당에 공연을 하는 학교 현장은 없었다. 전국의 모든 문화 예술 관련 산업이 일시 정지되는 커다란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자본과 인재가 있는 곳들이 간간히 온라인화를 시도할 뿐이었다.


더구나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태어난 둘째는 가족의 루틴을 리셋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아기가 밖에 나가자면 스스로 마스크를 찾아 쓰던 시기였다. 아내는 사업을 그만두고 두 아들을 돌보는 주부이자 간간이 들어오는 프로젝트와 공모사업을 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코로나 3년을 지나며, 가족은 변화를 맞았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둘째는 어린이집에 적응했다. 늦은 오후 하원을 하러 가면, 아직 덜 놀았다며 밖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할 정도다. 그리고 아내는 프리랜서로서 성장했다. 온라인에서 마케팅 실무 강의를 했다. 예전에 다니던 광고 회사의 브랜드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가끔은 글을 기고해 돈을 벌기도 했다. 아내는 육아를 전담하며 남는 에너지로 할 수 있는 최고치의 커리어적 성장을 해내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가 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놔버리지 않았다.


가장 많은 엄마들이 경력을 중단한다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 우리 부부는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10년 넘게 쉬지 않고 일했던 나에게는 쉼표가 필요했고, 아내에게는 다음 커리어를 위한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다. 더 깊은 글을 쓰기 위해, 더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해, 더 나은 창업가가 되기 위해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육아라는 게임에 교체 투입되었다. 가족은 서로를 도와야 하는 운명의 팀이다.   




나는 우리 집 육아 교체 선수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된 선수들에게 축구 해설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교체로 들어간 선수들이 많이 뛰어줘야 해요. 침체된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합니다."


우리 가족의 육아 교체 선수인 나는 항상 이 말을 생각한다. 갓난아기 돌볼 때처럼 잠 설치느라 몸이 힘든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집중해야 한다. 아빠가 육아를 하고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플레이들을 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두 아들은 아빠만 보면 그렇게 '놀자'라고 조른다. 엄마에게는 무턱대고 놀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림을 그려달라, 보드게임을 하자' 식으로 하나씩 말하지,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놀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차이일까. 존댓말을 배우는 다섯 살 둘째는 '요'를 붙이면 존댓말이 되는 줄 알고 시도 때도 없이 '아빠, 놀자요!' 라고 한다. 잠깐의 틈을 주지 않는다. 아빠에게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꼴을 보지 못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물을 끄기 1분 전부터 옆에서 다릿가랭이를 붙잡고 섰다.


"아빠 이제 다됐죠? 빨리 놀자요."


아이들은 아빠가 '놀아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기가 막히게 안다. 아빠가 나랑 진짜 놀고 있는지, 마지못해 놀아주고 있는지. 아빠의 집중을 원한다. 아빠랑 놀이하다가 뭔가 만족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잘 시간이 되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울며 말한다. "오늘 하나도 못 놀았는데 왜 벌써 자요?" 나는 체력을 다 썼는데 하나도 못 놀았다는 말을 들으니 맥이 풀린다. 아들들의 마음속 신남이 매일 역치를 넘게 하는 일. 아빠가 육아를 하고 있을 때 비교적 수월하다. 그렇다. 육아 교체 선수로서 나는 그라운드를 흔들어줘야 한다. 손흥민 선수가 후반 교체 투입 13분 만에 달성한 해트트릭, 역사에 남은 그 해트트릭이 나의 이상향이다.


이미지 출처 : MBC뉴스


1학년은 신경 쓸 것도 참 많다. 놀기만 잘해도 그만인 시절은 끝났다. 나는 아들이 초등학생으로 진화하는 시기에 육아 휴직을 했다. 학부모 간담회도 참석해야 하고, 녹색 어버이 조끼 입고 교통지도도 해야 한다. 참관수업도 가야 하고, 담임 선생님과 정기 상담도 내 몫이다. 알림장과 준비물도 꼼꼼히 챙겨야 하고, 아들이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도 대략은 파악해야 한다. 급격히 넓어지는 관심사와 넘쳐나는 호기심을 어떻게 채워줄지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도 고민해 봐야 한다. 오늘 할 숙제를 성실히 하고 나서 노는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도 1학년의 학부모의 일이라고 한다. 어렵게 생각하면 끝이 없으니 하루하루 성실히 보내면 또 그뿐이다.


아들은 초등학교 첫 학기를 마쳐간다. 누군가는 천진하게 깔깔대는 어린이를 보면 '세상 걱정 하나도 없을 때' 라 하지만 8살의 세계에도 기막힌 절망과 온몸으로 겪는 아픔이 있다. 아들은 이전보다 동생에게 더 많이 양보해야 하는 것이 억울했다. 젓가락질 연습하다 반찬을 다 떨어뜨려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했다. 양치질을 스스로 하고 그 결과에도 스스로 책임져야 함에 좌절했다. 물론 그 책임은 결국 아빠 것이다. 아들은 무서운 치과 치료만 걱정하지, 비싼 치료비를 내주는 게 진짜 책임이라고 생각하진 못한다. 1학년은 1학년이 감당할 만큼의 아픔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아픔 끝에는 성장이 온다. 이제 아들은 능숙한 젓가락질을 뽐내며 숟가락 없이 급식을 다 먹었다고 자랑한다. 할아버지가 갔고, 아빠가 갔던 익숙한 그 길을 이제 8살 아들도 간다. 아니 훨씬 더 빨리 갔다. 나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젓가락질을 제대로 했다. 서예가 붓 잡는 모양새의 젓가락질로는 콩자반 하나도 제대로 못 집었지만, 습관을 바꾸기 위해선 '젓가락질 그렇게 하면 쌍놈'이라는 큰 아버지의 불호령이 필요했었다. 아들은 당근이나 채찍 없이도 단단하게 고정된 정석 젓가락질로 깻잎도 떼어먹는다. 아들은 나보다 10년은 더 빨리 성장했다.


아들은 첫 학기를 잘 마쳐간다. 나름 선전했다. 나는 10년 넘게 일만 하다가 육아 현장에 교체 투입되어 처절하게 적응하고 있지만, 아들은 담담하게 초등학교에 스며들었다. 선생님도 잘 만나고 친구들과도 제법 친해졌다. 방과 후 교실에서 체스를 배워와 아빠를 이기기도 했다. 이제 글밥이 있는 책도 제법 읽고, 메시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인 것도 안다.




아빠, 나도 가고 싶어요. 베트남.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말했다.


"아빠, 친구 OO 이는 학교를 빠지고 가족 여행 다녀왔대요."

"그래? 우리도 지난번에 싱가포르 다녀왔잖아."

"아니요. 그땐 학교 안 다닐 때잖아요. 학교를 안. 가. 고. 여행을 갔다고요."

"흠. 그렇단 말이야? 학기 중엔 학교를 가고, 여행은 방학 때 가는 건데..."


아들은 벌써 학교가 재미있으면서 지겹다. 굳이 매일 학교에 가야 하나 싶은 거다. 여름 방학을 목 빠지게 기다린다. 한 학기만에 매너리즘에 빠진 건가 싶다. 매너리즘은 그 시기에 이룰 성장을 다 했다는 증거 중 하나다. 아들은 역시 성장이 빠르다.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을 보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요즘 학교는 예전처럼 개근이 꼭 미덕은 아니라지만, 내가 보수적인 건지 천성이 그런 건지 '성실'이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딱 잘라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와 아빠가 베트남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아들은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도 가고 싶어요. 베트남

아들은 나도 베트남에 가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에 가고 싶은 건지 학교에 빠지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물론 답은 '둘 다' 일거다. 어쨌든 아들은 정확히 자기 의견을 말했다. 나도 베트남에 가고 싶다고.


아들의 방학은 7월 말인데, 베트남 호치민행 비행기는 이보다 빠른 7월 초였다. 70대 '지공 노인'과 조금이라도 더위에 덜 고통받기 위해 최대한 빠른 스케줄로 다급하게 출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 원정은 둘이 갈 생각이었다. 이 여행의 대장 할아버지의 목적인 '정탐'에 충실하려면 2인 1조 면 충분했다. 1학년 꼬마는 '정탐꾼들'에겐 짐일지도 모른다.




삼부자 여행의 추억


사실 삼대가 떠나는 여행은 나의 오래된 로망 중 하나였다. 내가 아들이 생기면 '할아버지-아들-손주' 3대가 함께 여행을 가자 생각해 왔다. 돌아보면 아버지와 40년간 함께했던 긴 시간 속에서 가장 힘이 센 추억은 함께 간 여행이다. 어렸을 때 고생하며 다녔던 기억은 부자의 평생 안주거리가 되어 함께 기억하며 울고 웃게 한다. YS가 당선되던 92년 겨울 어느 날, 9살, 6살 아들과 함께 눈 덮인 관악산 정상을 밟은 기억은 아버지와 나의 첫 도전이다. 30년도 넘은 유년 시절 일을 얼마나 자세히 기억하겠냐만은, 때마다 사진을 보며 추억한 덕분에 지금은 관악산 제1광장에서 같이 먹은 육개장 라면 맛까지 생생하다.


누군가의 기억에 영원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영생이다. 어린 아들이 커가며 간직할 추억에 할아버지가 깊이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삼대 여행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노인이 영생할 기억의 거처를 만드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장엄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삼대가 여행을 가면 재미있다. 2박 3일간 강원도로 떠났던 제1회 삼대 여행 이후 우리는 남자 삼대가 떠나는 여행을 '삼부자 여행'이라고 부른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거리는 소금산 출렁다리의 느낌도, 600개가 넘는 계단을 단숨에 1등으로 올라간 6살 꼬마의 승부욕도, 잘못 든 길 아무도 없는 어느 숲 속에서 셋이 함께 '우하하' 웃었던 소리도 생생하다.

강원도로 떠난 제1회 삼부자 여행


'그래, 아들을 안 데려갈 이유가 없지. 제2회 삼부자 여행은 베트남에서 하는 거야. 어차피 할아버지가 제안한 이 여행은 아들과 손주를 위한 거였으니까. 가보자 까짓 거. 1학년 아들도 한 몫하지. 힘들어하면 그냥 쉬면 되고.'


1회 삼부자 여행에서 600 계단을 자기가 1등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사춘기 전까진 아들에게 자부심일 거다. 출렁다리의 느낌은 평생 기억할 거다. 할아버지 아빠와 베트남에 함께 가면 이런 것들이 100개는 생길 텐데 결석이 대수냐 싶었다. 베트남 원정대에 8살 대원을 합류시키기 위해 호치민행 비행기 표에 소인 1명을 추가했다.


그렇게 8살 대원이 베트남 원정대에 합류했다.


(둘째야 미안하지만 베트남은 형아랑 셋이 다녀올게. 대신 엄마랑 매일 데이트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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