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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2. 2023

아빠 구해줄 거지?

아빠는 수영 못하거든

물에 빠지면 죽는 어른


나는 수영을 못 한다. 내 키보다 깊은 물에 빠지면 죽을 운명이다. 40년을 살도록 그 운명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좀 부끄럽다. 변명하자면 물을 극복할 기회가 특별히 없었다.


어린이 시절 나는 또래보다 키가 컸고, 3살 아래 남동생은 또래 중 가장 작았다. 그러니 동생과 나는 항상 머리 두 개 차이가 났다. 작디작은 체구지만 말이 상당히 빨랐던 동생이기에 세 살부터 완벽한 문장으로 쉴 새 없이 재잘댔는데, 그런 모습을 본 어른들은 '옹알이할 것 같은 애가 엄마랑 대화를 하냐'며 놀랐다. 


그래서 그 시절 부모님의 최고 관심사는 동생의 키를 키우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징허게도 뭘 안 먹던 동생을 위해 당시로선 희귀했던 성장판 검사를 한 적도 있다. "아직 성장판이 열려있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생생하다.


동생은 싫어하던 우유를 하루에 한 통씩 먹어야 했지만, 키 크는데 좋다는 새로운 운동은 형보다도 먼저 경험할 수 있었다. 동생은 학교에 갈 무렵 'YMCA 아기스포츠단'이 되어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수영을 하면 몸을 쭉쭉 늘리니 키가 큰다는 소리가 있었다. 동생은 수영을 시작한 이후에도 반에서 키순서로 1번 아니면 2번이었지만, 얼마 후엔 '물에 빠져도 죽지 않는 어린이'가 되었다. 반대로 나는 키만 컸지 '물에 빠지면 죽는 어른'으로 자라 갔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기회는 있었다. 스무 살, 동해 바다에서 갑자기 다리가 땅에 안 닿아 패닉 하던 나를 친구가 뒷덜미를 잡고 꺼내준 적이 있었다. 애초에 무서워서 허리춤을 넘어가는 곳까지는 가지도 않는데, 그곳만 패인 구덩이가 있던 모양이었다. 죽을 뻔했다는 사실보다, 얕은 곳에서 혼자 허우적 대는 나를 보며 깔깔대던 시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당장 수영부터 배워야지 굳게 다짐했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인생에 배워야 할 것은 수영 말고도 많지'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영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접배평자, 배평접자 그런 수영은 못 해도 좋으니 다만 개구리헤엄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파닥거리기만 해도 좋으니 물에 뜨기만이라도 했으면. 바다에 조난당해도 바로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으면 한다.


나는 이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 의식이 굳어버린 40살의 나 대신, 아직 뭐든 해보고 싶은 8살 아들을 먼저 설득했다. 아들이 자유형을 마스터할 때쯤 아빠를 설득해 수영을 배우게 하길 바라며. 베트남에 떠나오기 전 아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들, 너 이번 여름 방학 때 수영 배워볼래?"

"수영이요? 아빠, 나 좀 무서운데요."

"아빠는 어린이 때 수영이 무섭다고 안 배웠더니 40살인데도 수영을 잘 못해. 근데 삼촌은 1학년 때 수영 배웠거든? 지금 삼촌 어떻게 된지 알아? 물속에 20m나 내려가잖아. 스쿠버 다이빙. 그때 물속에서 찍은 니모 사진 보여준 거 기억하지?"

"네, 고래도 있었잖아요. 아닌가 고래 상어라던가? 뭐 그럼 수영해볼게요."


그리고 아들은 YMCA 아기스포츠단 출신 삼촌처럼 수영가방을 챙겨 수영장에 갔다. 아들은 삼촌과 달리 반에서 키가 제일 크지만, 수영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에덴의 수영장


"아빠, 여기 수영장 있는 거 맞죠? 몇 층이에요? 베트남에서 제일 기대되는 게 수영하는 거예요."

"정말이야? 너 베트남 오기 전에 수영 딱 한 번 했잖아."

"네 맞아요."


아들이 수영을 기대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원래 아들은 물을 무서워했다. 특히 눈이 시린 느낌을 못 참았다. 샤워할 때는 혹시나 눈에 물이 들어갈까 봐 있는 힘껏 눈을 감았다. 어쩌다 코에 물이 살짝 들어가면 비명을 질렀다. 수영 하루 배웠다고 과연 그 두려움이 사라졌을까.


'에덴'에는 루프탑 수영장이 있었다. 삼부자는 베트남에서의 첫 수영을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수영복을 입었다. 아들은 물안경, 수영모자에 구명조끼까지 풀세팅했다. 아버지는 수영복과 가운만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영 어색해 안절부절못했지만, 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에서 봤던 수영장은 꽤나 화려했는데 과연 어떨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R' 버튼을 눌러 루프탑으로 향했다.

에덴 스타 사이공 호텔 루프탑 수영장


문이 열린다. 아들이 뛴다. 밤에는 루프탑 바로 쓰이는 듯한 레스토랑을 옆을 지나친다. 야외로 나가는 문을 연다. 해가 지고 뜨거운 햇살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후덥지근한 사이공의 공기가 느껴진다. 계단을 몇 개 오른다. 야자수가 보인다. 다른 사람은 안 보인다. 대박. 수영장 전세다.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하얀색 비치 의자엔 가 수영장을 따라 늘어서 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한 발씩 밟고 내려간다. 발목부터 종아리를 타고 무릎, 허벅지로 시원함이 차오른다. 더위에 시달리며 올라갔던 체온이 내려간다. 한 두발 내려가다 참지 못하고 풍덩 뛰어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감질나게 빨대로 빨다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 같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영장 물이 몰디브 바다처럼 투명한 하늘빛으로 보인다. 샛노란 조명이 수면에 슬금 비추니 반짝이는 한낮의 윤슬 못지않다.


Depth of Swimming Pool
1m4

수영장 옆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다행히 나는 죽지 않을 깊이다. 나는 죽지 않을 걸 알기에 뛰어들었지만, 아들은 깊어 보이는 물을 앞에 두고 잠시 구명조끼를 매만졌다. 역시 아직은 물이 무섭구나. 수영 하루 배웠다고 달라질 수는 없겠지.


"아들, 들어와. 진짜 시원해."

"내 키보다 깊어요? 그래도 구명조끼 입었으니 괜찮겠죠?"

"응, 겁먹지 마. 괜찮..."

첨벙. 풍덩.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아들은 물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아들이 나를 부르더니, 물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더니 쑥 하고 들어갔다.

"아니 너 벌써 물속에 들어갈 수 있어? 첫 시간부터 배운 거야?"

"아니요. 처음이라 발차기만 배웠어요. 근데요. 그냥 해보니까 됐어요."


아들은 이제 물이 무섭지 않다고 했다. 물속을 수십 번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잠수 대결을 신청했다. 아들은 개헤엄을 치며 제법 앞으로 가고, 뒤로 발라당 누워 하늘을 봤다. 구명조끼를 입긴 했지만 아이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순간 내 아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코에 물이 들어갈까 봐 조마조마해 머리도 못 감던 '어제의 아들'은 한국에 남아 있고, 베트남에 함께 온 '오늘의 아들'은 물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들은 한 계단 성장했다. 이대로 성장하다 보면 아빠의 소원인 '물에 빠져도 죽지 않는 어린이'가 되는 것도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아들아 성장해서 아빠를 구해다오


성장은 기쁘다. 성장을 위해 힘을 쏟아 본 사람은 모두가 안다. 어제는 절대 안 되던 피아노 연주가 오늘 갑자기 막힘 없이 될 때 쾌감은 짜릿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중년의 아빠들이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러다 보면 승진을 하고, 연봉이 오른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아들이 좋아하는 김민재 선수는 중국에서 튀르키예를 거쳐 이탈리아 리그로 갔다. 그 해 소속팀을 우승시키더니, 올해는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성장하다 보니 어느새 월드클래스 수비수가 되었는데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장하고 싶은 욕구는 고통이 된다. 김민재 선수는 3년 만에 월드클래스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축구 선수는 그렇게 빨리 성장할 수 없다. 더 슬픈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99.9%는 월드클래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쟤는 되는데 나는 안 되면 고통이 더 커진다. 게다가 성장은 길고 지난한 데다 계단식이다. 계단의 평평한 곳이 길게 이어지면 다음 계단이 언제 나오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의 노력이 꼭 내일의 변화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하던 일이 실패하고, 돈이 떨어지고, 다른 이들에게 받던 인정이 사라지면 나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바라건대 이제 좀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두 시간째 수영장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는 저 아들놈이 성장 앞에서 균형 있는 사람이 되면 맞추면 좋겠다. 최대치의 성장을 통해 기쁨을 누리되, 고통 앞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길. 때로는 지혜롭게 포기하길. 갑자기 물에 뜨는 법을 터득하는 성장의 날이 있다면, 기록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 정체의 날도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길.


"아들, 제발 좀 이제 방으로 돌아가자. 할아버지 피곤하셔."

"왜요. 조금 더 있으면 안 돼요?"

"아빠 간다. 알아서 와."

"그럼 대신 내일은 수영 두 번 해요."


물에서 나오지 않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조만간 나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영을 배우게 될 것 같다. '아빠 물에 빠지면 내가 구해줄게요. 아빠는 수영 못 하잖아요.'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수영을 배우자. 그러면 '물에 빠져도 죽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 아들 덕분이다.


고맙습니다. 아드님. 아빠를 성장시켜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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