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모리가조/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새물결플러스
다양한 구원에 대한 신학적 통찰이 있지만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정의가 아닐까?
복음은 그냥 기쁜 소식이 아니라
'희망없는 사람도 희망이 있다'는 소식이라는 것이,
'희망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희망이 있다'는 소식에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부서진 현실을 끝까지 감싸안으시는 자가 내 곁에 있다면
그보다 위안이 되는 소식이 또 있을까?
그게 어디있냐고, 증명하라고 묻기 전에
그렇게 믿어보자.
완전히 부서진 이 현실 가운데서
그래도 이런 소식이 있다면
이런 소식을 믿는다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그냥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저 하늘 어딘가에서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는 세계를 혀를 차면서 바라보는 그런 신이 아니라
우리의 부서진 마음보다
더 아픈 마음을 쥐어뜯으며
나보다 더 먼저 울로
나보다 더 크게 우는
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