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더 이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안 곳곳에 문제가 있어도 그냥 방치하고 살았습니다.
아내와의 의논 끝에 이제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사하는 일이 너무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드는 일이라서 그냥 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주말마다 조금씩 조금씩 손 닿는 대로 문제 있는 곳을 정리하고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보일러를 교체하는 일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재료를 사다가 직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장 난 문고리를 교체하고 현관과 베란다에 곰팡이를 제거하고 페인트칠도 했습니다.
하면 할수록 손을 봐야 할 곳이 자꾸 생깁니다.
못 하나도 제대로 박지 못하는 내가 평생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하자니 실수도 많이 하고 너무 어려운 일이었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정돈되어가는 모습에 성취감과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집안일에 얼마나 소홀하고 무심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끼의 수필집인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小確幸(소확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둘러 싸여 정작 내 소중한 일상을 통한 행복을 소홀히 했습니다.
늦잠을 자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고 대화하는 일들이 희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배의 제일 밑 부분에는 물을 저장하는 공간이 있으며 이곳에 담겨있는 일정량의 물을 “평형수”라고 합니다.
평형수는 배의 균형을 잡아주어 배가 순항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나 화물을 더 태우기 위해 평형수를 덜어내면 배는 균형을 잃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평형수는 가족이며 친구이기도 하고 내게 행복을 주는 小確幸입니다.
이제
평형수를 채우고 짐을 덜어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