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근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소리엘 Feb 15. 2017

안녕, 금동아

2002.03.01 - 2007.02.15


금동이에게.


안녕, 금동아. 네가 갓난 강아지인 채 우리에게 온 지 만 14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야 처음으로 편지글을 쓰다니, 우리 사이도 참 각박했구나.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어렴풋이 그 날을 기억한다. 2002년 우리 가족이 일산에 살 때였어. 숙모와 숙모네 아이들이 다투면서 '왕눈이'가 잠시 우리 집에 쫓겨났었고, 철없던 세연이는 우리 집에 강아지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아마 내색은 안 했어도 못내 왕눈이와 같이 사는 숙모네가 부러웠을 거야. 왕눈이가 다시 숙모 네로 돌아가자, 줬다 뺐는 게 어딨냐며 세연이는 울어버렸다. 그 덕택일 거야. 나는 너를 알게 되었어. 2002년 5월 5일의 일이다.


여느 집 막내가 그렇듯, 너는 관심의 중심이었다. 똑똑하고 착한 심성에 활발하기까지 한 너는 매일 호수공원을 막무가내로 달리곤 했다. 잘생기기는 어쩜 그리 잘생겼는지, 동네에서 같이 산책할 때마다 사람들의 부러움과 호기심을 한 몸에 받곤 했어. 낯선 사람들에게도 순하게 다가가는 너의 성격도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때의 나는 비만 덩어리였기에, 너와 다니는 산책이 거의 유일한 운동이었다.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빠르고 세차게 흘러간다. 재수, 대학, 군대를 겪으며 나는 더욱더 바삐 살았다. 갈수록 집에 있는 시간은 짧아졌고, 또 그만큼이나 그걸 고역으로 여겼다. 수험생활 동안 미뤄놨던 사춘기가 뒤늦게 터진 탓인지, 머리만 반쯤 굵어진 채 집 밖을 배회하며 20대를 보냈다. 그때가 너와 내가 자연스레 멀어진 시간이었을 거야. 나의 생각은 점점 모나지고 말투는 더욱 모질어지던 그 시간 동안, 너는 갈수록 귀가 가늘어졌고 굼떠졌고 늙어갔다. 간혹 너를 바라보다, 모처럼 휴가를 나온 군인이 변해버린 가족을 바라보듯 하여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회인이 된 나는, 정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모모'를 잃은 '도로 청소부 베포'처럼,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바쁘게 허덕이고 있다. 그 허탈한 몸부림 끝에 시간은 저축되기는커녕, 거짓말처럼 날아가 버린다. 너와 보냈을 소중한 시간들도, 그 기회들도 그중에 하나였다 생각하면 너무 비겁할까. 

가끔 일찍 퇴근하여 귀가라도 하는 날에는, 나는 마치 이방인이라도 된 양 행동하게 된다. 낯설고 어색해서. 현관 앞에서 반쯤 졸고 있는 노견老犬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내 마음엔 미안함과 어색함만이 가득했다. 그럴 때마다 다 늙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반겨주는 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나는 너 앞에만 서면 애교를 부리는 아이처럼 더욱 지친 기색을 보이며 어깨를 한껏 굽혔고. 너는 지친 게 뭐가 대수냐는 듯 나를 반겨줬다.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마다 너를 있는 대로 끌어안으며, 그 따스한 온기에 위로받곤 했다. 이제는 너만큼이나 헤져버린 인형을 가지고 과정도 결론도 이미 정해진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도 너는 즐거워했다. 늙은 관절이 아팠을 텐데도. 너는 정말로 좋은 동생이었어.


나는 너에게 좋은 형이었을까. 나는 서툴고 덜 여문 사람이라 누구에게 좋은 아들, 좋은 오빠,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아득하기만 하다. 간혹 네가 의도하지 않은 실수에도 나는 널 귀찮아했고,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너는 사람의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이젠 귀도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때마다 주눅 들어하던 너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있을까. 너는 좋은 동생이었지만, 나는 좋은 형이 아니었으니.


드라마 속 구절처럼, 일정한 슬픔 없이 너를 다시 추억할 수 있을까. 나는 어리고 바보 같은지라 아직도 제대로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암 선고를 받고 급격하게 야위어가는 너를 그저 바라만 봤다. 가끔 너를 껴안아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고백했지만, 뒤돌아서면 여전히 바쁘고 의미 없는 '바깥의 삶'을 씩씩한 척 살아갔다. 그렇게 지난 한 달은 지나갔다. 밤이면 기도 어딘가 숨이 막혀 크게 쌕쌕 대며 자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평생 동안 '내가 말하고, 네가 표정을 짓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젠 귀도 들리지 않아 내 말이 닿지 않는 너의 자는 모습을 보며, 너의 표정을 보지 못할 나는 어떨지를 그려보곤 했다.


너의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나도 놀랄 정도로 차분하게 고개를 세로 저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너에게 어떤 형일까. 너는 내게,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그 소중한 의미를 네가 떠난 후에야 불현듯 깨닫게 될까 봐 두렵다. 반대로, 새삼 별거 아닌 해프닝이었던 것처럼 금세 웃으며 지낼까 두렵다. 너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우면 어쩔까. 또 너무 가벼우면 어쩔까. 

무기물이 된 내 동생에게 나는 어떤 말을 건네고, 너는 어떤 표정을 내게 지어줄까.


이별에 서툴다는 말은, 사실은 관계에 서툴다는 말이다. 관계에 서툰 나는 두렵고 두렵고 두렵고 두렵고 두렵다. 그래서 너에게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

내가 너에게 얼마나 빚졌는지. 다음 生이 있다면 나는 네가 어떻게 태어나길 바라야 할까. 내 친구나 자식이면 좋으련만. 그때는 내가 서툴지 않아서, 관계를 깨트리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을 수 있길. 다음에 내가 너의 반려견이 된다면, 내가 너의 말을 열심히 듣고 열심히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한다. 금동아. 내 동생.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임종무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2017년 글쓰기 목표 세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