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발버둥 치지 말자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읽고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여러 단편 소설들을 묶어 놓은 소설집인데, 소설 속 대부분의 주인공은 70대의 노인들로서,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남편과, 혹은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주인공 노인들은 자녀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삶에서 만족감을 누리며 살아간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후남아, 밥 먹어라>와 <촛불 밝힌 식탁>이다. 앞의 단편은 가난한 가정의 셋째 딸로 태어난 주인공이, 아들을 더 낳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바람을 담은 이름 "후남"으로 살다가, 미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 LA이나 라구나 비치 등의 지명을 언급하며, 남편이 식당 지배인으로 넉넉한 삶을 살다가, 어머니가 치매로 고생하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에 30년 만에 귀국하는 이야기이다. 치매로 아들들도 못 알아보는 어머니는, 미국서 온 "후남"을 알아보고, 옛날 그랬던 것처럼 "후남아, 밥 먹어라"라고 외치는데, 가슴이 아려왔다. 어머니는 셋째 달에 대한 안쓰러움과, 더 나아가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오셨던 것 같다. "밥"이라는 매개는 몇십 년 전의 한국에서는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였으니까.
<촛불 밝힌 식탁>은 자식을 다 키우고 아들네 근처에 살고 싶어 하는 노부부가, 아들네와 마주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이야기이다. 아들네는 부모님이 자신들의 집에 찾아오는 것이 싫어서, 거실 전등을 꺼 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노부부가 맞은편에서 확인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참으로 씁쓸했다. 부모란 그렇게 피하는 존재일까. 그런데, 나도 한국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져 산지 10년이 넘었으니, 그들과 별 차이는 없을 듯싶다. 한국에 나가본지 8년이 넘었다. 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를 얼마나 보고 싶어하실까. 이럴 때 보면 불효자인 것 같다. 그런데, 문득, 내 자녀들이 내게 그렇게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아마 엄청 괘씸한 생각이 들겠지. 이기적인가 보다.
다른 단편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대부분은, 주어진 환경에서, 세월이 흘러가는 데로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