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전 서울과 내가 살고 있는 양평에 첫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
눈 길에 차가 막혀 퇴근 시 고생한 사람들은 많았겠지만 그래도 첫눈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감성을 가져다준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저마다 기억 저편 언저리에 묻혀 있던 추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낸다.
내게는 어떤 추억이 있었을까?
문득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가장 기다려지는 첫 번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단연코 선물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1970 년대였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올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대부분은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았던 적이 두 번 있었다.
'월간만화 새 소년 12월호,
그리고 털실로 손수 짠 목도리.'
초등학교에 다닐 때 부러운 아이들 중의 한 명이 월간만화를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친구였다.
월간만화는 그 당시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종합잡지였다.
책장에 빼곡히 월별 순서대로 꽂혀 있는 잡지책은 아이들에게 그 집의 부와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년중앙이 최고였고 새 소년과 어깨동무가 그 뒤를 이어 그 시절 3대 월간 소년잡지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훔쳐보기도 하고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 책을 가끔 보긴 했지만 그 달에 발행된 새 책을 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오래전 일이라 어느 해에, 누가 선물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초등학생 때 새 소년 12월호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다.
성탄 전 날 밤, 혼자 집에 있는 데 누군가가 선물을 건네주었다.
새 소년 12월호와 별책부록.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받아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날 왜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밤을 꼬박 새워가며 만화책을 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도 틈만 나면 그 책을 보곤 했다.
처음으로 내 것이었고 소중했던 그 만화책이 내겐 첫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두 번째 선물은 교회 성탄절 이브행사에서 받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교회 학생부는 이래저래 분주해진다.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 연극과 장기자랑이 포함된 학생부 행사준비, 새벽송 준비등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탄절 일주일쯤 전부터 학교수업을 마치면 바로 교회로 달려가 밤늦게까지 준비물도 만들고 학년별로 공연준비 연습을 한다.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이브날은 가장 즐거운 날이기도 하다.
과자와 간식거리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고 남, 여학생들이 교회에서 밤새 같이 어울려 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진 않는다.
학생부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남녀 학생 선물교환이 있었다.
게임을 해서 서로 짝이 된 남, 여학생이 서로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것들이라 대부분 문구용품이나 손수건등 가벼운 선물이 대부분이었다.
내 짝이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선물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손수 짠 회색 털 목도리'
그날 여학생들이 준비한 선물 중 최고의 것이었다.
손수 짠 것이라며 수줍게 웃으며 건네던 여학생과 부러워하던 다른 남학생들의 모습이 떠 오른다.
선물 받은 목도리를 두르고 집집마다 새벽송을 같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해 겨울 나의 목을 따뜻하게 했던 털 목도리, 그것이 나의 두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마도 여러 번 받았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을 까서 차근차근 뒤집어 보면 찾아낼 순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그 시절의 크리스마스 선물만큼 소중했던 것을 찾아내기가 쉽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