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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Oct 09. 2018

남자를 위한 요가는 세상에 없다.

그렇다고 딱히 여성을 위한 요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에 비해 남성 요가 인구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에 대한 설명(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핑계라 생각하는) 중 하나는, 남성의 신체 골격 구조가 여성의 그것에 비해 요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요가가 불교와 힌두교 계통 승려들이 긴 시간 명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련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참고할 때, 물론 저런 '생물학적' 설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편이 맞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여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유리'한 것도 물론 아닙니다. 좀더 솔직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자든 여자든 초보자들에게 요가는 어렵습니다. 고급 요가 동작들 사진이나 동영상을 한 번 보십쇼. 성별을 떠나 애당초 그런 동작들에 유리한 인간이 지구 상에 얼마나 있겠습니까-_-


힘 엄청 쎈 언니, 골반이 유연...한 오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좀더 쉽게, 많이 요가를 선택하는 것은, 아마도 요가가 매우 드물게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육체/운동 활동'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해볼 따름입니다. 남성들이 점령하고 있어 소수의 여성 참가자는 성적 대상으로 대접 받기 십상인 다른 운동 분야들과 달리, 요가는 그런 불쾌함이 상대적으로 적게 존재할 확률이 비교적 높다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극소수의 운동 종목 중 하나겠지, 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적지 않은 경우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근거를 알기 어려운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 또한 남성들이 요가에 가까이 가지 않는 다양한 이유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가의 경우, 다른 운동 분야들에 비해 힘과 억지로 해낼 수 있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물론 다른 운동들 또한 제대로 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의 훈련을 거친 정확한 통제와 기술이 필요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해 보이는 웨이트 트레이닝도 엄청난 집중과 정교한 테크닉이 필요한 고난이도의 운동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저런 기구를 힘으로 그냥 막 땡겨볼 수 있는 반면, 요가의 경우 그런 접근으로는 초기 진입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어릴 때부터 자신감 뿜뿜을 누리고 안 되면 소리질러 해결하며 살아오던 남성들이, 힘도 어거지도 통하지 않는 육체 활동을 마주했을 때 느끼게 되는 분노는 상당할 겁니다.


이런 요소들을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요가는 다른 운동 종목들 - 혹은 다른 모든 것들과 비슷합니다. 입문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팍팍 느는 것 같은데 좀더 잘하고자 하면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하고 끝없는 발전의 단계가 있는데 그 길은 사실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고...


개인적으로, 두어 달 정도 전부터 요가 수련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 아쉬탕가 첫번째 시리즈를 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었는데, 낮에는 긴 시간을 한 번에 내기도 어렵고 아침에 길게 하자니 배고프고 말이죠. 그러다보니 아침에 요가 대신에 동네 공원을 뛰는 것을 자꾸 선택하게 되더군요. 마음은 요가를 좀더 하고 싶은데...꼬로록.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확 바꿔봤습니다. 30~50분 정도로 비교적 짧은 시퀀스를 하는 대신, 가능한 매일 아침 요가를 하는 쪽으로요. 수련 종목도 기존의 아쉬탕가에서 빈야사쪽으로 바꿔, 짧은 시간을 할애하되 몸을 더 강하게 집중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나서 20~30분 정도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며 잠을 깬 후, 7시쯤 부터 40분 정도 거실 한쪽에서 수련을 합니다. 한 사발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한 후 아내와 함께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지요. 처음에는 몸도 뻑뻑하고 잠도 덜 깨고 해서 영 내 몸 같지 않더니,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는지 아침 요가를 하지 않은 날은 하루 종일 좀 답답하고 찝찝하고 그렇습니다. 아침 식사에 곁들이는 커피와 같은 역할이랄까요. 게다가 아침인만큼 조용히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힘과 근육을 쓰는 방식도 더 정교해지고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유연하게 수련 방식을 바꿔가며 요가를 이어갈 수 있는 데에는 아내의 도움이 결정적입니다. 매일 같이 엄청난 수의 요가 동영상을 보고 요가 지도 책을 읽으며 다양한 수련 방식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는 부지런한 선생님이죠. 덕분에 서로의 몸에 필요한 움직임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어떻게 동작들을 구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에 대한 의논도 자주 합니다 (이효리씨와 이상순씨가 같이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난히 반가운 기분이 들었던 것도, 아마 저 부부도 우리처럼 그렇게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그리고 의논을 통해 계속 바꿔가는) 시퀀스는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한 시퀀스입니다. 결국 비슷비슷한 동작으로 채워져있다고 하더라도, 제가 가진 강점과 단점들이 고려된 하나의 시스템인 것이지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하는 것이라는 것까지 포함된... 사실 그래서, 아침에 그렇게 요가 수련을 하고 있노라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 뿐 아니라 마음도 참 좋습니다. 제게 최적화된 맞춤 수련이라니, 좋잖아요, 히힛.


남성을 위한 요가는 없습니다. 여성을 위한 요가도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몸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한다면, '나'를 위한 요가를 조금씩 만들어 갈 수는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정말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수련을 하고 연구를 해가야 합니다. '하루 오분으로 끝내는 뭐시깽이' 식의 사기성 짙은 위험하고 부분적인 조언에 눈길 주지 않고요. 저의 경우 아내가 저를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큰 행운이 있어 비교적 쉽게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저 역시 어영부영 벌써 10년 가까운 시간 요가를 해왔으니까요. 


시작은 쉽지 않지만, 요가 수련의 독특함은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선사합니다.


만약 꾸준히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신다면, 요가는 여러분께 많은 자유와 좋은 삶의 방식으로 보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비교적 덜 받으면서도 수많은 동작들을 레고처럼 조립, 내 몸에 필요한 움직임들로 채워진 요가 시퀀스를 구성하고 수련을 해가는 기분은 각별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가 광고를 하는 것 같은 문장들로 글이 끝나기는 합니다만, 뭐 또 어떻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



아, 부부 중 한 사람이 요가를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요가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요가 선생님이라고 해서 남편을 위한 요가가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물론 아니고요. 적지 않은 수의 여성 요가 선생님을 알고 있지만, 글쎄요, 그녀들의 남편들이 모두 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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