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치 미쵸~
저자와 아는 사이라고 자랑 좀 해야겠다. 나와 헤지의 관계는 특별하다. 그렇게 러블리하진 않고, 다사다난하다. 미스핏츠, 청춘씨:발아, 필리즘, 알트, 퍼블리까지 같이 했다. 함께 해서 더럽기도 하고, the love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충무로에 있는 광안리란 술집에서 술먹고 서로 춤추고 난리도 났다.
헤지는 우리 사이, 그러니까 예비 태극기부대 박리세윤, 주식왕 박진영, 돼저씨 구현모와 일인분 생활자 김혜지라는 4인팟 안에서 허브와 같다. 우리 4명 단톡방은 항상 말이 많지만, 헤지는 유난히 우리 셋의 개별 상담을 자주 해준다. 아니 해줬나? 잘은 모르지만, 진영 리세윤 모두 헤지에게 여러 상담을 했을 테다. 연애든, 뭐든.
물론 고민을 들어주는 만큼 털어 놓는다. 가족, 페미니즘, 직장 등등. 진짜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에게 선물을 무엇을 해드려야 하나, 오랜만에 대구에 내려가니까 어쩌고저쩌고. 거짓말 안하고, 미래에 결혼할 내 파트너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보다 이 4명과 나눈 이야기가 더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난 헤지의 사소한 모습까지 기억나는데, 헤지는 나와 한국언론진흥재단 대외활동 면접에서 같은 조였고, 난 맨 왼쪽에 있었고 헤지는 나보다 오른쪽으로 2칸 오른쪽에 있었다. 머리는 자갈치 모양이었다.
허브 (HUB) 같기도 하고, 허브 (HERB) 같기도 하다. 며칠 전, 꽤 우울한 글을 인스타에 올렸는데 그걸 본 헤지가 내게 화분을 선물해줬다. 서로 일감을 물어준 적은 있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선물을 받은 적은 없는데 말이야. 그 친구는 아직 내 집에 잘 살아있다. 물론 잎 몇 가지가 노래졌지만...ㅠ 나만 특별관리한 건 아니다. 헤지는 타인의 감정에 참으로 섬세하고, 예민해서 카톡 몇 줄만으로도 타인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위로해준다. 치나 잘하지!
발칙하다기엔 성숙하고, 어른스럽다기엔 (좋은 의미로) 까져버린 누나, 언니, 친구다. 이 책은 그런 누나, 언니, 친구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적어낸 일기장이다. 내가 아는 헤지의 모습은 물론이고, 알지 못했던 헤지의 생각도 담겨있었다.
이십구년을, 고작 이십구년밖에 살아온 사람이 무슨 이야기거리가 많겠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의 두께가 얇을지언정 고민의 깊이는 얕지 않다. 대구에서 태어난 장녀이자 딸, 29세 여자, 노동자, 전세살이, 청년, 제작자 등. 한 사람의 인생은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자를 낳는다. 다양한 각도로 삶을 비출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갈래의 생각이 나온다. 김혜지라는 29세 일인분 생활자 앞에 다양한 수식어가 붙듯 말이다.
가장 표준의 삶은 아니다. 청년이라는 추상적인 명사를 끄집어내 일직선상에 흩뿌려놓으면, 혜지는 진보적인 축에 속했을 테다. 그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한다는 점에서 더 극으로 기울었을 테다. 가장 표준의 삶은 아닐 테지만, 기성 세대가 혀를 끌끌차거나 고개를 갸우뚱대는 '요즘 것들'의 생각의 깊이에 대한 증명이다. 또한 노동, 페미니즘, 개인주의, 독립, 환경, 지속가능성 등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이 책엔 다양한 소재가 담겨있다. 가족, 페미니즘, 노동, 생존, 성장 등. 안온한 일상에 담겨있는 평화로운 에세이는 아니다. 헤지는 평화로운 교외가 아니라, 지루하지만 치열한 일상이 담겨있는 선유도에 살고, 우리는 일상을 버텨내기 때문이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퇴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청춘이라는 시간을 자양분으로 삼은 고민은 인생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이 일기장은 그 열매의 일부다.
일인분 생활자 우리 치 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