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의 그림자

by TJ

엘레나는 잠들지 못했다.


손바닥의 문양이 어둠 속에서 뛰고 있었다. 검푸른 선은 피부 위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피부 아래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장 박동과 엇박자로, 한 번은 빠르게, 한 번은 느리게.


도망쳐.


이곳은 너를 배우는 곳이 아니야.


지하 시험장에서 들은 목소리가 계속 돌아왔다. 엘레나는 이불을 끌어올려 손을 감쌌다. 그래도 문양의 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창밖의 풍향계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스카이 아카데미의 밤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불편했다. 스톰엔드의 밤에는 언제나 바람이 지붕을 긁고, 낡은 창틀을 흔들고, 멀리서 풍경 소리를 가져왔다. 이곳의 밤은 그런 소리들을 일부러 지운 것 같았다.


엘레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는 임시 등록 패가 놓여 있었다. 붉은 위치 확인 표식이 작게 빛났다. 그녀가 방 안을 걸을 때마다 표식도 조금씩 깜빡였다.


감시.


이요라는 보호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엘레나는 이제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패를 집어 들었다. 한참 바라보다가 베개 밑에 밀어 넣었다. 붉은 빛이 천을 뚫고 희미하게 번졌다.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좋아."


엘레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따라오려면 따라와 봐."


문을 열자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쪽 기숙사의 밤 회랑은 낮보다 길어 보였다. 벽에 걸린 수정등은 발소리에 맞춰 하나씩 켜졌다가 꺼졌다. 엘레나는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손바닥 문양은 북쪽을 향할 때마다 더 뜨거워졌다.


북쪽.


지하 시험장이 있던 방향.


그리고 검은 탑이 있는 방향.


그곳으로 가까워질수록 벽 문양이 달라졌다. 입학문과 기숙사에는 바람개비 문장이 많았다. 하지만 북쪽 회랑에는 닫힌 눈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눈꺼풀을 내린 채 잠든 눈. 혹은 일부러 보지 않는 눈.


엘레나는 그 문양 앞에서 멈췄다.


손바닥이 뜨겁게 뛰었다.


벽 안쪽에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슥.


슥.


슥.


도서관.


아니, 금서실.


엘레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닫힌 눈 문양 아래에는 손바닥만 한 홈이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어제 카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금색 문장이 있는 책은 네가 먼저 만지지 마.


책이 너를 먼저 읽을 테니까.


"그럼 문은 괜찮겠지."


스스로도 설득력이 없었다.


엘레나는 손바닥을 홈에 가져갔다.


문양이 열을 삼켰다.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손바닥의 검푸른 선이 홈 안쪽으로 뻗어 들어갔다. 오래된 자물쇠가 자신의 열쇠를 알아본 듯, 닫힌 눈 문양이 천천히 떠졌다.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는 바람이 나왔다.


아카데미에 온 뒤 처음 느끼는 진짜 바람이었다. 오래된 종이와 먼지, 마른 잉크, 금속 녹 냄새가 섞인 바람. 엘레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폐가 드디어 제 일을 기억해낸 것 같았다.


금서실은 원형이었다.


책장들은 벽에 붙어 있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었다. 거대한 고리처럼 천천히 회전하며, 수천 권의 책을 매단 채 어둠 속을 돌고 있었다. 몇몇 책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몇몇은 표지가 숨 쉬듯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중앙에는 읽는 자를 위한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는 이미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엘레나는 다가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책장이 저절로 넘어갔다.


슥.


슥.


종이 넘기는 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엘레나는 한 걸음 다가갔다.


책의 표지는 검은 가죽이었다. 제목은 없었다. 대신 가운데에 금색 문장이 박혀 있었다. 바람개비도, 닫힌 눈도 아니었다.


열쇠 구멍.


엘레나는 손을 멈췄다.


"만지지 마."


카이의 목소리였다.


그는 언제 들어왔는지 입구에 서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왼손에는 새 장갑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장갑 손목 부분이 제대로 잠기지 않아 금빛이 아주 얇게 새고 있었다.


"따라왔어요?"


"네가 위치 패를 두고 움직이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패가 절 감시하는 거라면서요."


"맞아."


"그걸 당신도 볼 수 있고요?"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정말이지, 이곳 사람들은 침묵을 대답처럼 썼다.


"비켜요. 확인해야겠어요."


"그 책은 확인하는 물건이 아니야."


"그럼 뭔데요?"


"거래하는 물건."


카이는 한 걸음 다가왔다.


"네가 한 줄을 읽으면, 책도 네 기억 한 줄을 읽어."


엘레나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누가 제 기억을 읽었어요. 지하에서."


"그래서 더 안 돼."


"왜요? 제가 뭘 들었는지 당신도 알아요?"


카이의 손이 검 손잡이에서 멈췄다.


"대충."


"늘 대충이네요."


"엘레나."


"당신은 내가 무슨 위험에 처했는지 안다는 얼굴을 해요. 이요라 마스터도 그래요. 할머니도 그랬고요. 그런데 아무도 나한테 말하지 않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 몸에 표식이 생겼고, 출생 기록은 없고, 명부는 나를 실험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도 모르는 편이 낫다고요?"


금서실의 책장들이 천천히 멈췄다.


모든 책등이 두 사람을 향했다.


카이는 입술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회피라기보다, 삼키면 안 될 말을 고르는 얼굴이었다.


"네가 알면 바뀌는 게 있어."


"좋은 쪽으로요?"


"대부분은 아니야."


"그건 내가 결정할게요."


엘레나는 책상 쪽으로 돌아섰다.


카이가 팔을 뻗었다.


그보다 먼저 책이 움직였다.


검은 표지가 스스로 열렸다. 금색 열쇠 구멍 문장이 빛났고, 책장 사이에서 바람이 터져 나왔다. 카이는 엘레나의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바람에 밀려났다.


책 위에 첫 문장이 떠올랐다.


읽는 자의 이름을 기록하라.


엘레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도 책이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엘레나.


잉크가 잠시 망설이듯 번지더니, 그 아래에 다른 이름을 덧붙였다.


실험체 0번.


카이가 낮게 욕을 삼켰다.


엘레나는 책장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스스로 넘어갔다. 한 장, 두 장, 세 장. 페이지마다 그림과 글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늘의 문.


스톰엔드 제단.


폭풍의 요람.


태양처럼 빛나는 작은 돌.


그리고 사람의 형체를 한 그림.


책장이 멈췄다.


엘레나는 숨을 잊었다.


그림 속에는 소녀가 있었다.


흰 축제복을 입고, 손끝에 바람을 두르고, 발목에는 검은 봉인 표식을 가진 소녀. 머리카락의 길이도, 눈매도, 입술의 모양도 엘레나와 같았다.


하지만 그림 아래의 연도는 수백 년 전이었다.


"이건..."


엘레나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카이가 책상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만 봐."


"나잖아요."


"아니야."


"그럼 누군데요?"


카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책 아래쪽에 문장이 떠올랐다.


마지막 열쇠는 바람의 얼굴을 하고 태어난다.


엘레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손바닥 문양이 찢어질 듯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책의 잉크가 솟아올라 그녀의 손 쪽으로 뻗었다.


카이가 검을 뽑았다.


날이 책상 위를 가르자 잉크가 흩어졌다. 하지만 책은 닫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열쇠는 문을 열지 않는다.


열쇠는 문이 된다.


"엘레나, 뒤로 물러서."


이번에는 명령이었다.


엘레나는 물러서고 싶었다. 그러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 속 소녀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종이에 그려진 눈동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림 속 소녀의 입이 열렸다.


목소리는 엘레나의 목소리와 같았다.


도망쳐.


금서실의 문이 쾅 닫혔다.


책장들이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천히가 아니었다. 쇠사슬이 부딪치고, 종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카이가 엘레나를 끌어당겼다.


"문으로!"


"안 열려요!"


문 위의 닫힌 눈 문양이 붉게 변했다.


침입 기록.


금서 접촉.


봉인 대상 확인.


엘레나는 그 글자들을 보았다.


"봉인 대상?"


카이는 검을 들고 문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검끝이 닿기 전, 벽에서 검은 실들이 튀어나왔다. 스톰엔드 제단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실이었다.


그 실들은 카이가 아니라 엘레나에게 향했다.


카이가 몸을 던졌다.


검은 실 하나가 그의 장갑을 찢었다. 금빛이 번쩍였다. 실들은 그 빛을 싫어하는 듯 뒤로 물러났다.


엘레나는 그 틈에 문으로 달려갔다. 손바닥을 닫힌 눈 문양에 댔다.


"열어."


문양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날 읽고 싶으면, 먼저 내 말을 들어."


손바닥의 검푸른 문양이 빛났다.


금서실 안의 바람이 그녀 쪽으로 모였다. 이번에는 부르지 않았다. 엘레나는 들었다. 쇠사슬에 묶인 책들의 떨림, 닫힌 문양 안쪽의 작은 틈, 검은 실이 두려워하는 금빛의 결.


틈.


거기에 손을 넣듯, 엘레나는 바람을 밀어 넣었다.


문이 열렸다.


카이가 엘레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회랑 바닥에 굴렀다. 금서실의 문은 곧바로 닫혔다. 닫힌 눈 문양은 다시 잠든 얼굴이 되었다.


한동안 둘 다 말하지 못했다.


엘레나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검푸른 문양 옆에 금색 잉크 한 줄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열쇠.


카이가 그것을 보았다.


"이요라 마스터에게 가야 해."


"그 전에 대답해요."


엘레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저 책에 있던 얼굴. 정말 제가 아니에요?"


카이는 시선을 피했다.


그때 회랑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요라였다.


그녀는 잠옷 위에 로브만 걸친 차림이었다. 급히 온 듯 머리카락 몇 가닥이 풀려 있었다. 하지만 시선은 곧장 엘레나의 손바닥으로 향했다.


이요라의 얼굴이 무너졌다.


"벌써 읽혔구나."


엘레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벌써?"


그 말이 가장 아팠다.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는 뜻이어서.


이요라는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회랑의 수정등들이 일제히 꺼졌다.


어둠 속에서 금서실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이번에는 아주 조금.


틈 사이로 검은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종이는 바닥을 스치며 엘레나의 발치까지 왔다.

카이가 막기도 전에, 종이 위에 문장이 떠올랐다.


예언의 마지막 줄은 삭제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


삭제자: 카이.


일요일 연재
이전 04화첫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