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진다는 건더 많은 아픔을 알아가는 일 2
테라스 벽면에는 요한의 사진이 잔뜩 붙어 있다. 칸차나부리 테니스 대회에서 첫 승을 거뒀을 때, 방콕 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할 때, 태국 아마추어 축구 리그에 출전했을 때 찍은 것들이다. 요한은 자기 할아버지가 스웨덴 테니스 국가대표였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일흔이 넘은 요한은 몇 달 전 허리를 다쳤다. 그 뒤로 종일 집에서 영화만 본다. 낮에는 테라스와 이어져 있는 요한의 방문을 닫히는 법이 없다. 우리는 문 너머로 대화를 나눈다.
“아, 따분하기가 그지없군.”
창문 너머로 요한의 넋두리가 들려온다.
“아, 따분한 하루가 이렇게 좋네요.” 하고 대답했다.
요한은 다 들리는 혼잣말로 툴툴 거린다.
“빌어먹을 젊은 인생.”
그의 말에는 대체로 숨은 의도가 있다. 인생의 숙련자들은 본인이 원하는 바를 절대로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일의 책임을 나눠지는 방법인 듯하다. 며칠 동안 창문 너머로 대화하며 그의 말에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데 익숙해졌다. 요한이 서너 번 툴툴거리면 기어코 내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을 한다.
“오늘 저녁에 축구하러 가시렵니까? 제가 언제 태국에서 축구를 해보겠어요. 그냥 같이 가서 구경이나 하시죠.”
끙끙 거리며 허리를 곧추 세운 요한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어쩔 수 없지. 소년이 원한다면야...... 대신 남에게는 비밀이야.”
나는 이 말을 절대로 구경만 하고 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곧장 축구팀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스웨덴 출신 골키퍼가 동네 축구계 복귀를 알렸다.
우리는 탐의 집으로 향했다. 탐은 얼마 전 실직한 요한의 친구다. 강아지 네 마리를 보살피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런 그에게 오후 축구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정이다. 우리는 탐의 차를 타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는데 기름값은 요한이 낸다. 탐이 실직한 이후 술값이나 기름값은 요한이 계산한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두고 굳이 탐의 차를 얻어 타고 운동장에 가는 이유다. 요한에게는 기름값을 내줄 명분이 필요했다. 서로 다 알고 있지만 구태여 티 내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규칙은 나는 기름값에 돈을 보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 동안 나누었던 마음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 누가 선을 넘는가에 따라 동정이 될 수도, 연대가 될 수도 있다. 탐과 나는 아직 친구는 아닌 셈이다.
운동장에서 요한과 탐은 다른 세계에 온 사람들처럼 들뜬 얼굴이다. 누군가는 아내의 눈을 피해, 누군가는 지난한 실직의 시간으로부터 도주해 자유를 만끽한다. 나에게 한낮 경험에 불과한 일이었으나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덩달아 홀가분한 기분에 젖어든다.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공놀이가 아닐까. 무섭게 매운 떡볶이를 먹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빗소리가 치익- 맥주 캔 따는 소리처럼 들리던, 치킨 배달 완료 메시지에 버선발로 뛰쳐나가던 밤들을 떠올리면 그렇다.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을 완전히 걷히게 할 수 없지만 잠깐이마나 나를 어둠 밖으로 끄집어낸 준 것들은 보통 그랬다. 한낮 그런 것들이었다.
휘슬이 울린다. 평균 연령 예순의 축구팀에서 나는 소년이라 불린다. 보이! 보이! 이 말은 뛰라는 뜻이다. 빗나간 공을 주워오는 것도 내 몫이다. 상대 선수들은 종종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장난친다. 그러면 나도 상대선수 옷자락을 잡으며 웃어 보인다. 운동장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사람은 나뿐이다.
소년이라는 호칭이 삼십 대 중반이라는 시간의 굴레에 균열을 냈다. 그 틈에 나는 정말로 아이가 된 듯하다. 운동장에 드러누워 응석 부리기도 하고 노인의 어깨를 툭 치고 달아난다. 그에게는 쫓아올 힘이 없으므로 씩씩 거리며 웃어넘긴다. 나는 아주 잠깐 우주의 법칙 바깥에 선다. 여기서는 어깨에 짊어진 것이 거의 없다. 소년이 더 빨리 뛸 수 있는 건 삶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 벗어버린 것들은 이러했다. 언젠가는 인생 최대 목표였던 작가라는 이름의 직업. 혼자 사는 나를 걱정하기 시작한 주변인의 시선, 미래에 관한 막연한 걱정, 명함을 주고받는 만남, 부쩍 많아진 양복 입는 날, 일해도 매번 같은 숫자가 적혀 있는 통장.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 시간과 함께 어깨에 쌓인 짐들이다. 언젠가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른은 무작정 도래하는 시절이지만 소년은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쌓이는 시간은 당최 덜어낼 방도가 없다.
보이! 보이! 공이 멀찍이 벗어나고 나는 웃으며 뛰어간다.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더는 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누군가 외친다. 보이! 보이! 공 간다! 여기서 나는 한계를 모르는 소년이다.
요한과 탐과 나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누린다. 허리를 다치기 전 어느 날로 돌아가거나, 역할을 잃어버린 일상의 바깥에서 오른쪽 공격수라는 역할을 얻는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의 법칙을 거스른다. 운동장에서 시간은 각자의 궤적을 그리며 지난다. 잠깐의 환상 혹은 자기 합리화라 불러도 괜찮다.
우리는 지금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