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진다는 건더 많은 아픔을 알아가는 일 1
요한과 남의 방과 연결되어 있는 공용 테라스. 한쪽 다리를 등받이에 올린 채 누워 영화를 보는 요한. 테라스 구석에서 담배 피우며 승려의 설법 영상을 보는 남. 매일 저녁 집 앞 골목에 모여 뛰어노는 아이들. 고장 난 가전제품을 사러 다니는 트럭. 여기저기서 소리가 나지만 분명 이곳은 고요하다.
거리와 집을 구분하는 건 허리 정도 오는 키의 화분들이다. 누구나 마음먹으면 들락거릴 수 있지만 아무도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옆집 개가 나를 보고 으르렁 대기 시작했는데 왕왕 짖다가도 화분 너머 집으로 들어가면 꼬랑지 내리고 돌아간다.
그놈 이름은 링이다. 아무도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없지만 녀석이 나에게 대들 때마다 옆집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링... 링,.. 링! 처음에는 개 이름이 링링링인 줄 알았으나, 몇 번 듣다 보니 음절마다 억양이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링은 부드럽고 두 번째 링은 소리가 커지며 리-잉 하고 음절이 길게 늘어진다. 세 번째 링은 짧고 단호하다. 개 주인은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어르고 달랬다가 기어코 혼을 낸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관계는 이름만으로도 몇 개의 감정을 주고받는다.
링 덕분에 나는 시내에 나갈 때마다 기어 변속기가 고장 난 요한의 자전거를 빌려야 했다. 고단 기어에 맞춰져 있어 페달이 꽤 묵직하지만 멈칫거리다가는 집 앞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링이 쫓아올 게 뻔하다. 온 힘을 다해 페달을 굴려 골목 어귀를 빠져나가야 한다. 모퉁이를 돌면 다른 집 개가 지키는 골목이다. 링은 모퉁이 너머까지 따라오는 법이 없다.
낮에는 테라스 문을 열어 두었는데 오 센티미터 남짓한 단차가 있는 선만 넘지 않으면 링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요한 가족 와 링 사이 모종의 협정이 맺어진 듯했다. 링과 종종 눈을 마주치면 몇 초간 뚫어지게 쳐다보다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글 쓰거나 책을 읽었고, 링은 냄새 맡으며 돌아다니다가 골목에 낯선 이가 나타나면 경계 태세를 갖췄다. 여기서는 나보다 링이 더 바쁜 나날을 보낸다.
머리 위 둥지에는 테라스의 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작은 새 가족이 산다. 요한은 새 가족이 이 집의 경계를 넘어온 역사에 관해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테라스 바깥에 걸린 작은 전선줄에 둥지를 지었다가 몇 달 뒤에 처마 안쪽 경계 근처로 이사했다. 그때는 작은 새 부부만 살고 있었는데 테라스 안쪽 조명 줄로 둥지를 옮긴 뒤에는 새끼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알을 낳기 위해 조금 더 안전한 곳에 집을 지은 거라고 했다. 몇 달에 걸쳐 새 가족과 요한 가족은 나름의 방식으로 협상을 한 셈이다.
새 가족과 요한 가족이 함께 사는 규칙은 단순하다. 요한과 남은 새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모이를 챙겨주는 일도 없다. 남에게 새의 이름을 지어주었냐 묻자, 그는 그냥 ‘작은 새’라고 부른다고 했다. 공간을 나눠 쓰지만 그보다 커다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작은 새 가족도 나름의 수칙을 지킨다. 그들은 테라스 안을 더럽히는 법이 없다. 똥을 싸거나 음식을 흘리지도 않는다. 새 가족은 요한 가족을 위해 노래하지 않지만 두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 의무를 다한다. 딱 그 정도 마음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간다.
저녁이면 테라스 앞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논다. 숨바꼭질하거나 꼬리 잡기를 한다. 링도 아이들 사이에 끼려고 안간힘을 쓴다. 물론 아무도 링을 게임에 껴주지 않는다. 링이 다가오면 발을 크게 굴러 쫓아 내기 바쁘다. 다행히 링은 눈치가 없는 편이다. 아이들이 발을 크게 구르면 멀리 도망쳤다가 다시 뛰어와 꼬리를 흔든다. 혼자 다른 놀이를 하고 있지만 눈치채지 못한다. 마냥 신나서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올리고는 꼬리를 흔든다. 눈치 없는 개 한 마리가 무서워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장면이 떠오르면 얼굴 붉게 달아오른다.
오후 일곱 시가 넘어가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요한은 아홉 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그전까지 골목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마치 모두가 누군가의 지휘아래 움직이는 것 같다. 링은 작은 턱을 넘지 않고 새들은 조용히 먹이를 나르며 아이들은 일곱 시면 집에 간다. 누구 하나 진지하게 얼굴을 맞대고 규칙을 정한 적은 없다. 부딪히고 깨지며 맺은 협약이다.
이십 년 전 요한 가족이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 사나운 개가 있었다. 요한은 그놈을 미친개라고 불렀다. 미친개가 죽기 전까지 그 개 주인과 하루가 멀다 하고 다퉜다. 몇 년간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던 협상은 미친개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남은 개가 죽었을 때 주인을 찾아가 위로했다. 그 일로 경계는 허물어졌고 지금은 좋은 이웃이다.
나는 남에게 왜 미친개 주인을 위로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은 담배를 피우며 대답했다. 싸운 건 싸운 거고 슬픈 건 슬픈 거니까. 그의 대답은 항상 명료하다.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문장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이웃이 된다는 건 여러 감정을 세세하게 나눈다는 의미인 걸까.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어느 날에는 슬픔을 함께 짊어진다.
물론 요한은 아직 미친개를 용서하지 못했다. 종아리 아래 녀석에게 물린 상처를 볼 때마다 씩씩 거린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협상이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끝나는 건 아닌 듯하다.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들며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원하지 않는지 가늠한다. 요한의 집 테라스 바닥의 작은 단차로 그어진 선을 누군가는 넘어오고 누군가는 얼씬도 못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십 년 동안 이 마을이 만들어 온 경계 안에서 나른한 오후를 즐긴다. 요한 가족에게는 나름대로 치열했을 시간이 내게는 포근한 울타리가 됐다.
종일 테라스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요한과 남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두 사람이 이 동네에 정착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더 물었다. 그러자 남은 지긋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고생한 건 고생한 거고 네가 이 테라스에서 좋은 날을 보내는 건 그냥 좋은 거야.
자세를 고쳐 잡고 글을 쓴다. 이내 새끼 새들이 울어댄다. 종종 링은 낯선 이를 향해 짖고 아이들은 소란스럽게 뛰어논다. 아무도 서로의 삶을 시끄럽다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허락한 소음이다. 그리하여 고요하다. 이것은 오래 다투고 화해하며 맺은 약속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다.
그러고 보면 내 일상도 숱한 협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웃과 얼굴을 맞대고 논의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고 깨지며 만들어지는 일상. 고요함이 지나치면 지루함이 되기도 하지만 실은 지난한 협상 끝에 얻어낸 안정감이다. 먼 곳에서 바라보는 나의 일상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별일 없던 하루의 끝자락에 몸이 녹아내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