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대한민국에는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워라밸은 'work life balance'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OEDC 국가 중 근로시간 1, 2위를 다투는 대한민국이니만큼, 일(work)과 삶(life)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는 것은 당연합니다. 과도한 근무시간은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이어지며, 생산성 저하로 귀결됩니다. 대한민국의 노동생산성이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문다는 사실만큼 분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집에 가기 싫어 퇴근을 미루는 부장 때문에 부서 인원 전체가 퇴근을 하지 못하는 볼썽사나운 광경이 점차 줄어간다는 점은 그나마 희망적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워라밸에 동의하면서, 그 개념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강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워크와 라이프(좀 더 정확히는 근무시간과 근무외 시간) 간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만성피로를 제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피로감이 오직 업무에서만 비롯될까요? 업무 외 사적인 시간 속에서도 피로는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근로시간이 과도하다는 점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며, 근로시간을 좀 더 단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우리네 삶 속에서 만성피로를 몰아내 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성피로는 일터에서나 가정에서나 잘못된 생활패턴이 유지되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만성피로는 결코 워라밸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줄어든 임금으로 영위되는 기나긴 삶이 더욱 끔찍하고 피곤해질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가 업무 시간에도 업무 외 시간에도 끊임없이 피로한 까닭을 외부 원인에만 돌리면 우리는 영원히 만성피로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친숙한 개념을 재정의하고 그에 따라 생활습관을 재검토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에 저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BAR: Balance between Activity and Rest(활동과 휴식의 조화)
여기서 BAR는 우리가 자주 가는 술집이 아니라, 줄 위에 선 광대의 균형을 잡아주는 봉을 뜻합니다. 사실 이 공식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활동과 휴식의 재정의가 뒷받침되어야만, 비로소 이 공식은 전에 없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우선 우리 모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아래의 7가지 질문에 답해봅시다.
1. 휴가 때 떠나는 여행은 휴식이다.
2. 넷플릭스 시청은 휴식이다.
3. 지인과의 술자리는 휴식이다.
4. 커피 음용과 흡연은 휴식이다.
5. 주말에 찾는 명상센터는 휴식의 공간이다.
6. 스마트폰은 휴식을 제공한다.
7. 주말에 하는 놀이는 휴식이다.
어떻습니까? 이 가운데 몇 개가 '휴식'에 속할까요? 제 기준에 따르면, 위의 7가지는 모두 '휴식'이 아닌 '활동'에 속합니다. 휴식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혼란을 느끼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임의로 휴식에 대한 정의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갸우뚱하시는 분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된 휴식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활동과 휴식을 엄밀히 구분하고 참된 휴식을 취하기 시작할 때, 만성피로 원인들 간의 끔찍한 연결고리가 서서히 느슨해지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활동과 휴식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휴가 때 '레저활동'에 몰두한 뒤에 파김치가 되어 직장에 돌아옵니다. 피곤은 가시지 않고 회사일은 되지 않고 매사가 힘이 듭니다. 우리는 활동과 휴식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잠들기 전까지 넷플릭스 '시청 활동'을 통해 뇌를 혹사합니다. 뇌 피로는 육체피로보다 훨씬 해소하기 어려우며, 우리는 이 때문에 만성피로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잦은 저녁 술자리 '활동'은 수면을 방해하고 피로 누적을 부릅니다. 기상 직후 마시는 커피는 자연 각성제인 코르티솔과 겹쳐 과잉 각성을 불러오고 카페인 의존증으로 이어집니다. 오후 2시 이후 커피 '음용 활동'은 저녁잠의 질을 저하시켜 피로 누적을 야기합니다. 주말에 집을 떠나 명상센터를 찾아가는 일 자체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 고된 '활동'입니다. 아울러 명상센터에서 강제하는 많은 명상활동들은 실제로는 휴식이 아닌 '집중 활동'이며, 뇌에 휴식은커녕 긴장 및 피로를 가중시킵니다. 스마트폰 '시청 활동'이 뇌에 긴장을 불러옴과 동시에, 나의 손목이나 목뼈에도 좋지 않다는 점은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말에 하는 여러 여가 활동들은 긴장을 이완시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휴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가 활동을 즐기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여가 활동 사이에도 진정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사실 놀이야말로 휴식과 가장 혼동되는 개념입니다. 이 때문에 활동과 휴식에 대한 엄밀한 개념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휴식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휴식은 '멍 때리기'입니다. '내려놓기'라는 좀 더 고상한 표현도 있겠네요. 울리히 슈나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에서 여러 유용한 표현을 제시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오프라인 상태"(23쪽), "조용히 앉아 영화관의 관객처럼 자신의 두뇌가 화면에 투사하는 다소 혼란스러운 단어나 말, 영상 등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147쪽)입니다. 잠깐, 요가나 명상이 그와 같은 것을 권장하지 않는가요? 울리히 슈나벨의 말을 들어봅시다. "긴장을 푸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이른바 자기 계발서가 흔히 착각하는 점이 있다. 요가나 명상을 하면 집중력이 높아지며 그만큼 일의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이다. 이로써 본래 긴장을 풀고 영혼의 해방을 맛보아야 할 휴식은 다시금 능률을 중시하는 사고의 도구로 탈바꿈하고 만다."(230쪽)
진정한 휴식은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쉬는 것인데, 여기에서 쉬려고 노력하는 순간 '휴식하려는 활동'이 되어버립니다.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지 말고, 말 그대로 '멍 때리며' 몸과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휴식입니다. 화두를 굴리는 것도 활동이요, 신나게 노는 것도 활동입니다. 현대인은 일로 인해 잃어버린 놀이 시간을 보충하겠다는 생각에, 휴식을 줄여가며 '놀이 활동'에 몰두합니다. 이 모든 악순환이 만성피로의 원인입니다.
만성피로를 진정으로 끊고 싶다면, 내가 직장 업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업무 중 '자주' 멍 때려야 합니다. 내가 퇴근해서 그 무슨 활동을 하더라도, 그 활동 중 '자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멍 때려야 합니다. 일도 놀이도 모두 활동이지, 휴식이 아닙니다. 특히 놀이가 휴식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호모 루덴스 개념을 주장한 요한 하위징아 등의 철학자들은 모두 '일 vs 놀이'라는 미흡한 프레임을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 vs 놀이'라는 프레임은 오늘날 '워크 vs 라이프'라는 워라밸로 재포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휴식은 일이나 놀이 어디에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과 놀이는 모두 휴식이 아닌 활동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은 '집중(몰입, flow)'와 '휴식(rest, letting-go)'의 반복이 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집중은 활동 가운데 이뤄지는 반면, 휴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워라밸을 예로 들자면, 일(work) 중에도 활동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삶(life) 중에도 활동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이미 행위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직 휴식만 '자주' 챙기면 됩니다. 멍 때려야 합니다. 진심으로 틈만 나면 멍 때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