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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빨리 뛰어야 해? 그냥 천천히 뛰면 안 돼?  

다나카 히로아키 <슬로우 조깅 건강법>

제가 사로잡혀 있던 편견, 의심할 생각조차 않았던 수많은 선입견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힘들어야 운동 효과가 있다. 힘들지 않으면 운동 효과가 없다." 

저는 이 명제를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습니다. 뭔가 숨이 턱까지 닿고 주저앉을 정도로 힘들어야만 운동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라토너들의 바이블인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조지 쉬언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달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도록 뛰었습니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보람은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달리기가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방글방글 웃으면서 신나게 달리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3년 전부터 번 아웃되었던 저는 점점 운동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심해져가는 미세먼지도 한몫했지요. 공기가 이렇게 나쁜데 밖에 나가서 달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체력이 바닥을 기고, 하루 중에 개운한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다행히 1년 전인 2019년 초에 슬로 라이프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나날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슬로 라이프 스타일에서 운동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특히 운동을 오랫동안 쉬어서 기초체력이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떤 운동이 슬로 라이프에 적합할까요? 운동을 타고나게 싫어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비상신호를 접한 이들이 하기 좋은 운동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런 분들께 '슬로우 조깅'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약장수 같군요. 하지만 제가 달리기를 권한다고 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습니까. 제게 참으로 도움이 되어서 권해드리는 것일 뿐이지요. 슬로우 조깅의 창시자인 다나카 히로아키는 1947년 생이며, 후쿠오카 대학 스포츠과학부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그는 대사증후군에 걸려 고생하다 46세 때부터 스스로 싱글벙글 페이스 훈련(웃으면서 슬로우 조깅하기)을 통해 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50세에 개인 마라톤 최고 기록인 2시간 38분 50초를 경신했습니다.

그의 이력을 보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요소가 적지 않습니다. 첫째, 그는 46세 때부터 슬로우 조깅을 시작했습니다. 독자들 가운데 저를 포함해서 46세가 아직 되지 않으신 분들이 다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그는 현재 70세가 넘는 노인인데도 슬로우 조깅을 통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슬로우 조깅이 지금부터 시작해서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운동임을 보여줍니다. 셋째,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합니다. 슬로우 조깅에 관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책인 <슬로우 조깅 건강법>(군자출판사)을 번역한 조미정 씨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슬로우 조깅의 매력은 운동을 위해 따로 특별히 시간을 낼 필요 없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것과 저처럼 체력이 약하고 운동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도 힘들지 않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조미정 씨는 본디 운동을 싫어하고 체력이 약했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슬로우 조깅의 신봉자였던 일본인 친구로부터 이 책을 권해 받고,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조미정 씨는 번역 작업에 앞서 부산에서 저자인 다나카 히로아키를 직접 만나서 설명을 듣고 함께 슬로우 조깅을 해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그녀가 권하는 슬로우 조깅이니, 한층 신뢰가 가지요.  


그러면 지금부터 <슬로우 조깅 건강법>에 나오는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람들은 고강도의 운동만이 효과가 있다는 선입견을 지닙니다. 그런데 고강도의 운동이 하기 싫으니, 결과적으로 운동 자체를 포기하게 되지요. 운동을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결같습니다. "힘드니까요!!!!!"

다나카 히로아키 교수는 말합니다.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면 만병통치약과 같은 여러가지 효과가 우리 몸에 나타납니다. 그런 효과를 가진 대표적인 운동이 바로 슬로우 조깅입니다. 우리 연구팀은 슬로우 조깅을 '싱글벙글 페이스 운동'으로 칭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왔습니다. 하지만 고강도 운동을 해야만 신체가 단련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주장은 좀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달리기를 싫어하는 까닭은 '힘들어서'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힘들지 않게 천천히 달려보라고 부탁을 드려도, 여전히 너무 빨리 달립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천천히 달려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놀랍게도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달리세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가 들어온 유일한 주문은 "좀 더 빨리 뛰어라. 기록을 단축해라."였습니다. 단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마라토너들은 어떻게든 SUB3(42.195km를 3시간 안에 주파)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그와 같은 노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록 단축 과정에서 달리기 그 자체의 즐거움을 잃는 경우 또한 많이 보았습니다. 게다가 운동을 싫어하거나 몸이 다소 불편한 이들은 어떻게 더 빨리 뛰려는 노력을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겠습니까.

마라토너들은 부상을 달고 다닙니다. 달리기를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치고 무릎이나 발목, 아킬레스건이나 기타 부위에 고통을 겪지 않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를 뿐인 슬로우 조깅은 힘들지도 않을뿐더러, 부상의 위험도 없습니다. 걷다가 부상당했단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마찬가지로 슬로우 조깅은 마라토너들이 겪는 부상과 동떨어져 있는 건강한 운동입니다.


다나카 히로아키는 슬로우 조깅의 원칙으로 5가지를 제시합니다. 

슬로우 조깅의 다섯 가지 포인트 


1.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달린다.

2. 앞발로 착지한다. 

3. 턱을 들고, 시선은 전방의 먼 곳을 바라본다. 

4. 입을 살짝 벌리고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5. 하루 운동 목표량은 총 30-60분이다.  


제 경우에 비추어 다섯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저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달리는 것까지는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일본인 특유의 문화가 반영된 듯합니다. 일본어로 싱글벙글은 '닛코닛코'입니다. 닛코닛코를 외치면서 수십 명이 우르르 달려가는 광경은 다소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웃으면 좋지요. 기분 좋게 달리는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진짜 웃으면서 달리실 수 있는 분들은 그렇게 하셔도 좋고요. 

둘째, 앞발 착지는 슬로우 조깅뿐만 아니라 모든 달리기의 핵심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뒷발 착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세였지요. 하지만 뒷발 착지는 앞발 착지에 비해 신체에 3배나 강한 충격을 줍니다. 경험상 뒤꿈치는 앞으로 치고 나가는 달리기에 별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는 앞발만으로도 깡충깡충 얼마든지 달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차렷 자세로 장시간 서 있을 때 뒤꿈치는 필수적이지요. 앞발은 달리는 데, 뒷발은 서 있는데 적합합니다. 각각 쓰임이 다르지요. 

셋째, 보통 턱을 당기고 달리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나카 히로아키는 턱을 약간 들면 등이 아치형으로 휘어져서 산소를 더욱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턱을 들면 시선은 자연히 전방의 먼 곳을 바라보게 되지요. 슬로우 조깅 때에는 턱을 드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넷째, 흔히 달릴 때는 입을 벌리지 말고 코로만 호흡하라고 합니다. 정 안되면 들이쉴 때는 코로 하고 내쉴 때는 입으로 하라고 주문하지요.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은 분명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달리기 초보자들이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듭니다. 달리기를 접을 수도 있지요. 이 때문에 슬로우 조깅의 경우에는 입을 살짝 벌리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편이 좋습니다. 어린이들이 달리는 광경을 보세요. 코로 호흡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까. 수 천 년 동안 인류가 달릴 때 코로만 호흡했다는 주장이 있다면, 저는 믿지 않겠습니다. 코로 호흡하는 것은 좀 더 나은 방법이기는 합니다만, 입으로 해도 슬로우 조깅의 경우에는 상관없습니다. 

다섯째, 하루 운동 목표량 최소 30분,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이 점을 다루기에 앞서, 슬로우 조깅의 속도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다나카 히로아키는 초심자의 경우에는 시속 4-5km가 적당하다고 말합니다. 피트니스 센터의 트레드 밀 위에서 시속 5km의 속도는 여러분에게 어떤 느낌인가요?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에게는 뛰기보다는 걷는다는 느낌의 속도일 것입니다. 저도 시속 5km로 뛰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냥 빠른 걸음 정도이지요. 만약 시속 5km로 30분을 달린다면, 우리는 2.5km를 달린 셈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 특히 남성 분들께는 다소 실망스러운 속도와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시속 5km로 달린다는 것 자체가 "남들 보기에" 대단히 부끄럽고, 하루 2.5km 달려서 뭔 운동이 되겠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 경험상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쉬지 않고 30분을 달리는 다리와 발목을 갖추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독자들 가운데는 빨리 뛰는데 자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30분을 꾸준히 쉬지 않고 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달리기를 처음 하시는 분들께는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30분 이상 뛰어야 긍정적인 운동 효과들이 생겨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초심자들의 경우, 10분씩 3번을 뛰는 편이 좋습니다. 아마 달리기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10분 뛰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체력장 때에도 10분을 뛰어본 적은 없지요. 그 어떤 속도이든 3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면, 체력이나 건강의 정도가 확실히 다릅니다. 그때부터는 속도를 점점 올려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다나카 히로아키는 '닛코닛코'로 돌아옵니다. 슬로우 조깅은 상대방과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면 슬로우 조깅의 주의사항이랄까, 아니 오히려 장점에 해당하는 점을 3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슬로우 조깅은 준비운동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슬렁슬렁 걷듯이 뛰어나가면 됩니다. 다만 운동 후에는 정리운동(마무리 운동)이 필요합니다. 스트레칭을 해주고, 샤워까지 해주면 더욱 좋겠지요.(36쪽) 준비운동이 필요 없다는 점이 슬로우 조깅의 매력입니다.  

둘째, 슬로우 조깅은 식사 후에 시작해도 상관없습니다. 식후 30분 정도 지나서 달리면 됩니다. 격렬한 운동은 식후 2시간 후에 하는 편이 좋지만, 슬로우 조깅은 상관없습니다.(73쪽)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하고 세면까지 끝내고 집 밖으로 나가면 벌써 30분이 지났습니다. 그러면 그냥 나가서 달리면 됩니다.    

셋째,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날씨가 흐릴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다나카 히로아키는 슬로우 스텝 운동을 권합니다. 높이 20cm 정도의 스텝박스를 준비해서 다리를 바꾸어가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입니다. 저는 맨몸 스쿼트로 대신합니다. 보고 싶은 동영상을 틀어놓은 뒤, 그것을 보면서 스쿼트를 하고 스트레칭도 합니다. 예전에는 바벨을 들고 스쿼트를 했지만, 이제는 맨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슬로우 조깅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슬로우 조깅은 우리가 예전에 다루었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도 부합합니다. 슬로우 조깅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바로 패스트 러닝(fast running)이겠지요. 슬로 라이프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든 더욱 효율적으로 빨리 달리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큰 목표를 정하면 항상 포기하거나 지치게 됩니다.

제임스 클리어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atomic habit에 대해 말합니다. 모든 일과를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만큼 습관을 잘게 쪼개서, 의지를 발휘하지 않고도 쉽게 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슬로우 조깅은 아주 작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패스트 러닝은 아주 작은 습관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이키가이 사상은 작은 것에 충실하고 현재에 만족하기를 주문합니다. 이와 같은 사상이 잘 반영된 '슬로우 무비'는 특히 일본에서 많이 나오지요. 저는 슬로우 조깅이 슬로우 라이프의 이론과 실천에 적합하며, 격렬한 운동에 부담을 느끼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다나카 히로아키의 <슬로우 조깅 건강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슬로 조깅을 설명한 일본어 영상입니다. 한글 자막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F-47ZHEOqU

2. 앞발(forefoot 전족부) 착지에 관한 동영상입니다. 한글 자막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2Tn83C62dg

3. 앞발(forefoot 전족부) 착지에 관한 KBS 동영상입니다. 

https://youtu.be/leTVLwEoH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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