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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Nov 29. 2023

관찰의 동의어는 사랑

GV빌런 고태경

GV빌런 고태경은 정대건 작가의 장편 소설로 2020년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신춘문예는 여러 좋은 기능을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문학이란 장르가 고이지 않게끔 새롭고 신선한 상상력을 수혈하는 일일 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특한 소재와 재기 발랄한 인물로 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기준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아마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반가워할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조혜나"라는 영화감독이 "고태경"씨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는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인 고태경 씨는 GV빌런이란 별명을 가졌다. GV란 Guest visit의 축어로 관객과의 대화를 말하는데, 고태경 씨는 관객과 감독이 만나는 그 훈훈한 공간을 날이 잔뜩 선 비판으로 당혹스럽게 만든다. 터무니없는 말이면 무시하고 말겠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논리도 잘 갖추어져 있고 마땅한 말이라서 더 답변하기 곤란하다. 

고태경과 조혜나는 GV에서 처음 만난다. 조혜나는 "원찬스"란 (본인 기준에서) 졸작을 찍는다. 그녀는 그 작품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어찌 됐든 찍었다면, 팔아야 하는 게 직업 영화인이겠거늘. 그녀는 마뜩한 작품으로 참석한 GV 자리에서 고태경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 또한 고태경과 날 선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GV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 그녀는 고태경에 대한 인물에 흥미가 생긴다. 게다가 나중엔 그 고태경 씨가 조혜나가 영화를 시작한 계기인 "초록 물고기"의 조감독이란 것을 알게 된다. 조혜나는 고태경이란 인물에 더 흥미가 생긴다. 그리고 그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고태경에 대한,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한때는 잘나가는 감독의 크루였지만 이제는 영화판에서 빌런 짓만 하고 다니는 '루저가 된 고태경'을 담고자" 한다. 그리고 이내 모든 좋은 이야기가 그렇듯, 조혜나는 고태경에게 가졌던 선입견과 편견이 조금씩 조금씩 녹는다. 


언젠가 영화에서 주인공이 누군지 파악하는 법이란 글이 있었다. 그건 아주 간단한 데, 처음 영화가 시작됐을 때와 끝날 때 여러 경험과 체험으로 "가장 많이 변해 있는"인물이 주인공이란 거다. 변해 있다는 게 언제나 좋은 쪽을 지향하는 바는 아닐 테지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철저히 "조혜나"감독의 시선에서 기록되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고태경 씨에게 주인공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이 소설이 끝날 때 가장 바뀌어 있는 인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그는 GV빌런으로 시작해서, 감독 지망생으로 끝마침 한다.

GV빌런 고태경은 세련된 가요 같다. 정답과 문법을 잘 지키는 소설. 그리고 설계가 잘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문장이나 묘사에서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다만 그러다 보니 너무 명시적이거나, 혹은 "앗 이 정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싶은 지점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감상을 방해하는 정도까진 아니다. 괜히 이런 말을 적다 보니 독후감 빌런이 되는 듯한 기분이다.


정대건 작가는 실제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한다. 최근까지도 성실하게 문학 작품을 내고 있는 듯하다. 어떤 참신한 소재와 번뜩임으로 기쁘게 해 줄지 다음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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